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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The miracle of flight by Scott Buckley – www.scottbuckley.com.au
참조
다니엘서 개역한글
Cyrus The Great (Jacob Abbott)
The Pride Fall and Restitution of king Nebuchadnezzar (Henry Smith)
메소포타미아의 역사2 (한국문화사)
헤로도토스 역사 (동서문화사 헤로도토스/박현태 옮김)
유튜브 영상
Defending Daniel – Evidence for the Bible pt4(https://www.youtube.com/watch?v=5z4c4DxTHhE\u0026t=2223s)
Part 1: When was the Book of Daniel Written? The Aramaic Evidence.(https://www.youtube.com/watch?v=cxqLM9Pu0U0)
#메소포타미아 #헤로도토스 #네부카드네자르 #느부갓네살 #키루스 #바빌론 #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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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과, 바빌로니아의 멸망 – Faith – 오늘의 신앙
기원전 539년 10월 13일은, 대담하게도 하나님을 모욕하면서 술과 여자와 우상숭배에 빠졌던 바빌로니아 왕 벨 사살의 마지막 밤이었다. 그 밤은 벨사살 자신의 마지막 밤 …
Source: faithkorea.com
Date Published: 8/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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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 포로시대와 바벨론의 멸망
바벨론제국이 B.C. 586년에 유대왕국을 멸망시키고 B.C. 538년에 바사에 의해 바벨론이 망하게 되는 그 사이에 인도지방에서는 불교의 석가모니가 …
Source: cafe.chch.kr
Date Published: 3/29/2021
View: 8992
바벨론 제국의 멸망과 메대-바사제국의 등장(다니엘 5:1-31)
최초 바벨론은 니므롯이 창시자 였으며, BC 18세기, BC16세기의 고대 바벨론은 함무라비왕 때 가장 왕성했습니다. 그 이후에 점점 약해져 앗 수르에 멸망 …
Source: loveofjesuschurch.com
Date Published: 7/3/2021
View: 4395
바벨론의 멸망 – 국민일보
큰 성 바벨론은 그 짐승을 타고 앉아서 온 세상 위에서 군림하던 강한 힘입니다. 그러나 급기야 그 짐승은 자기를 타고 있던 음녀를 미워해서 망하고 벌거 …
Source: m.kmib.co.kr
Date Published: 6/5/2022
View: 6238
2.바벨론 멸망부터 페르시아에 의한 예루살렘 재건까지
바벨론의 멸망. 느브갓네살집안과 바벨론 사람들이 나보니두스와 그의 아들 벨사살보다 오히려 페르시아의 고레스 쪽으로 마음을 돌립니다 이 당시 …
Source: blog.naver.com
Date Published: 11/21/2021
View: 8591
바빌론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바빌론(아랍어: بابل, 아람어: ܒܒܙܠ, 히브리어: בבל)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고대 도시로 바빌로니아 제국의 수도였다. 현재의 이라크 바빌 주 힐라에 있는 …
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3/4/2021
View: 7951
50:1-46 바벨론에 대한 심판 예언 : 성경강해 – 열린문교회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징계하기 위해 바벨론의 정복욕을 이용했으나 그들이 지나치게 행한 것 때문에 심판하려는 것입니다. 내용구조는 바벨론의 멸망 …
Source: m.opendoor.or.kr
Date Published: 5/23/2021
View: 934
예배와 성경(41) – 바벨론 포로시대와 바벨론의 멸망
북이스라엘은 BC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고 남 유다는 BC586년에 바벨론에게 멸망하게 된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점령할 당시에 …
Source: hamin72.tistory.com
Date Published: 10/13/2021
View: 5682
제15장 여섯째 환상: 큰 성 바벨론의 멸망(17:1-19:10) 여섯째 …
여섯째 환상은 큰 성 바벨론의 멸망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는. 환상이다. 이 환상은 세상의 모든 악의 세력을 멸망시키는 최후의 심판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Source: img1.wsimg.com
Date Published: 5/2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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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바벨론 의 멸망
- Author: 써에이스쇼 sirace s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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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최초 공개: 2021. 5. 6.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fFHnC4MSZiQ
바벨론 포로시대와 바벨론의 멸망
출처
원문
남 유다왕국이 망하면서 유대인들은 4차에 걸쳐서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첫번째는 B.C.605년에 다니엘을 포함한 왕족들과 귀족 계급이었고, 두번째는 B.C.597년에 여호야긴 왕을 포함한 일반 백성들과 모든 방백들과 군사들 1만명 외에 많은 기술자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세번째는 B.C. 586년에 예루살렘의 성전과 성이 최후로 함락될 때 시드기야 왕을 포함한 백성들이었습니다. 네번째는 B.C. 581년 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왕의 시위대장인 느부사라단아 마지막 남은 유대인들을 사로잡아 갔습니다.
그렇게 대부분의 유대백성들은 바벨론으로 끌려갔고 유대 본토에 남겨진 백성들은 극히 미천한 자들로 토지를 갈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자들은 불과 2만 명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나라가 멸망한 후 각처로 도망갔던 유대인들이 다시 모여 왔으나 황무해진 그 지역의 형편은 기아와 무법천지였습니다.
반면 바벨론으로 끌려간 자들에게 바벨론 정권은 비교적 많은 자유를 허락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집을 짓고 사업을 할 수도 있었으며, 관리에 등용되기도 하였습니다. 비록 성전은 없었지만 종교의 자유도 허락되어서 성전을 대신한 회당을 중심으로 그들의 신앙을 유지하며 민족의 흩어짐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런 환경에서 신앙과 민족의 순수성을 유지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유대인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남유대왕국의 사람들로서 유대지파와 베냐민지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왕국의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12지파 중의 나머지 10지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앗수르(앗시라아)에게 망하고 일부는 포로로 잡혀갔으나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앗수르는 북이스라엘 백성의 대부분을 강제로 자신들의 다른 영토로 이동시켰고, 남아 있는 자들에게는 이방 민족을 이스라엘과 혼합되게 하여 새로운 사마리아족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스라엘의 잊혀진 열 지파로 사라져 갔습니다.
바벨론제국에 포로로 있던 유대인들은 바벨론이 바사(페르시아)에게 망한 후, 바사제국의 고레스왕(고레스2세)이 유대인들의 귀환을 허락함에 따라 1차 귀환을 하였습니다. 그 때가 B.C. 538-537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지도자는 스룹바벨이었습니다. 그 후 B.C. 457년 아닥사스다왕 때에 에스라를 지도자로 2차 귀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B.C. 444년 2차와 같은 아닥사스다왕 때에 유대인 느헤미야가 유대지방의 총독이 되어 민족을 이끌고 3차 귀환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포로귀환 후 활동하던 선지자들은 학개, 스가랴, 그리고 말라기입니다.
바벨론제국이 B.C. 586년에 유대왕국을 멸망시키고 B.C. 538년에 바사에 의해 바벨론이 망하게 되는 그 사이에 인도지방에서는 불교의 석가모니가 태어나고, 중국에서는 유교의 공자가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그리스에서는 지배계급인 귀족들에 대한 평민들의 불만이 폭력으로 귀족정치를 타도하고 평민에 의한 독재정권을 세우는 일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런 독재자를 참주라고 부르며 그런 정치를 참주정이라고 부릅니다.
그 참주정은 민주주의의 시효로 알려지는 그리스의 B.C. 508년의 민주정치의 도입까지 이어졌습니다. 민주주의(Demokratial)란 말은 민중(Demos)이 권력(Kratos)를 가지는 정치체제였던 것입니다.
바벨론 제국의 멸망과 메대-바사제국의 등장(다니엘 5:1-31)
첫째로 벨사살 왕의 역사성
다니엘 5장에서 바벨론 왕 벨사살이 큰 잔치를 베푼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역사 가들은 벨사살 왕이 과연 역사적으로 실제 했던 인물인가에 대해 의심해 왔었습니다. 왜냐하면 바벨론의 여러 문헌에 의하면 바벨론 제국의 마지막 왕은 나보니두스였으며, 바벨론 왕의 역대 왕들 중에 벨사살이라는 이름을 가진 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단지 다니엘서 5장에서 만 언급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벨사살이 역사적인 실제 인물이었으며 바벨론 제국 멸망 당시 그 가 바벨론을 통치한 왕이었다는 사실이 고고학적 증거들을 통해 분명히 증거되었습니다.
벨사살이 가공의 인물이 아닌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인물임을 확증된 것은 1854년 한 영국 영사 가 바벨론 왕 나보니두스(Nabonidus BC 555-539)가 옛 바벨론의 갈대아 우르 지역의 수호신 인 ‘달의 신’에게 바치기 위해 우르에 세운 신전의 폐허 속에서 몇 개의 조그만 점토 기둥들을 발 굴함으로써 였습니다. 그 기둥들에는 가로 세로 10cm 정도의 정방형에 글씨가 새겨져 있었는데 그 글의 내용은 나보니두스와 그의 큰 아들의 건강과 장수를 신께 기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바벨론의 왕인 나 곧 나보니두스가 당신께 죄를 짓지 않도록 해 주소서. 그리고 나의 장남이며 사랑하는 아들인 ‘벨사살’의 마음에 당신에 대한 경외심이 있게 하소서.’라 했습니다. 한편 1854년 이후에 벨사살에 대한 바벨론의 문헌들이 더 발견 되었는데, 그 때마다 벨사살의 왕자 또는 왕의 아들로만 언급되었고, ‘왕’으로서 확인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비문에서 벨사살이 비록 법적으로 왕위를 계승 받지는 못했지만 그 부친 나보니 두스와 바벨론의 공동 섭정을 하였음이 밝혀졌습니다.
바벨론의 최고신인 ‘벨’ 또는 ‘말둑’이라 불리우는 신보다 다른 도시 즉 하란과 우르의 수호신인 ‘달의 신’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졌던 괴짜 나보니두스 왕은 BC 555년에 등극한 지 3년이 되던 때부터 실제 통치권을 자신의 아들에게 맡겨 버리고 바벨론을 떠나 아라비아의 테이마(Teima) 라는 오아시스 주변에서 거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분명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그가 바사 왕 고레스 2세와의 전투에서 패한 후 실의에 빠져 그곳에서 은둔 생활을 했을 것으로 봅니다. 한편 이런 사실이 다니엘이 어떻게 바벨론 제국의 셋째 치리자가 될 수 있었는가를 설명해 줍니다.
즉 벨사살의 아버지 나보니두스가 정식 왕이었기 때문에 그의 지위가 첫째이고 벨사살 자신은 섭 정왕으로서 둘째 가는 자리에 있었고 따라서 다니엘에게 나라의 셋째 가는 자리를 줄 수 밖에 없 었던 것입니다. 한편 바벨론 제국의 메대-바사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기 직전인 BC 539년에 나 보니두스가 바벨론으로 다시 돌아왔었습니다. 그러나 아들 벨사살에게 실제 왕권을 내어 주지 않 았습니다. 다니엘서5장에서 벨사살이 메대바사 연합군에게 죽게 되고 나보니두스 왕은 메대바 사 연합군에게 항복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통해서 볼 때에 다니엘서의 벨사살이 다니엘이 허구의 인물을 이야기 한 것이 아니 고 역사적으로 실존한 인물이었음을 살펴 보았습니다. 비록 바벨론 여러 문헌에 벨사살이 법적 인 왕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할지라도 고고학 자료들은 그가 실질적인 통치자였음을 분명히 증거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 기록 의도가 역사적 사실을 알려 주기 위해서가 아닐지라도 반대로 역 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기록된 것임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이 같은 성경 기록의 역사성은 성경 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저자들에 의하여 기록된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다시 한번 확 증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벨사살의 연회와 하나님 모독사건 (1-4)
이제까지 우리는 다니엘 1장에서 다니엘의 바벨론 왕실에서의 성장 배경, 제 2-4장은 느부갓 네살 왕 통치 당시의 주요 사건들과 왕의 꿈을 통한 간접적인 묵시들을, 그리고 본 제 5장은 느 부갓네살왕이 죽은지(BC 562년) 약 23년 후인 바벨론의 마지막 왕 벨사살(BC550-539년)의 통치 말기에 있었던 신비한 손가락이 나타나 왕궁 벽에 글씨를 쓴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반 역사의 기록에 나타난 느부갓네살 이후의 바벨론 왕들의 계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느부갓 네살(BC 604-562), 그이 아들 에윌므로닥 (또는 아벨말둑BC 562-560), 에윌므로닥은 살해 됩니다.
다음 왕으로 느부갓네살의 딸과 결혼한 네르갈 사레셀이 왕이 됩니다. 네르갈 사레셀(또는 네 리 글리솔BC 560-556), 다음으로 네르갈 사레셀의 아들 라보로 소알후드(또는 라바시 말둑 BC556)는 왕이 된지 8개월 만에 암살되어 죽고 느부갓네살의 다른 사위인 나보니 두스(BC 556-539년)가 왕이 됩니다. 나보니 두스의 아들이 벨사살입니다. 느부갓네살은 벨사살의 외 할아버지입니다.
「나보니두스와 벨사살」(Nabonidus and Belshazzar, R. P. 도허티, 1929년)이라는 책에서는 벨사살의 어머니는 니토크리스였고 니토크리스는 느부갓네살(2세)의 딸이었을 것이라고 추론합니다. 만일 사실이 그러하였다면 느부갓네살은 벨사살의 외할아버지였던 셈입니다.
고대 근동 국가에서 왕들이 잔치를 배설하고 귀족들과 함께 술을 마시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 입니다. 그러나 벨사살이 베푼 연회는 정상적인 연회가 아니라 지극히 비정상적이고 방탕한 것이 었습니다. 왜냐하면 벨사살이 연회를 열고 있을 당시는 바사와 고레스 2세가 바벨론 제국을 다 점령하고 수도인 바벨론 성을 2년 동안 포위하고 있을 때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날 밤에 벨사 살 자신이 죽게 될 그런 급박한 상황에 잔치를 베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벨사살은 자신의 생 명과 나라의 존폐가 경각에 달려 있는 위태로운 시기에 자신의 악함과 어리석음을 온 세상에 드 러내려고 한 듯이 술에 취하고 방탕하는 비 정상적인 대 연회를 열었던 것입니다.
귀인 일천명을 불러 모아 잔치를 합니다. 멸망해 가는 제국이었지만 여전히 이 정도의 연회를 열 여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스의 역사가 크세노폰에 의하면 식민지로부터 들여온 각양의 좋 은 것들을 엄청나게 쌓아 두었기 때문에 바벨론 성이 포위되더라도 20년은 견딜 수 있었다고 합 니다. 당시 바벨론 제국은 이미 고레스에게 계속 패하여 수도인 바벨론 성까지 밀려 포위되어 있 었습니다. 패전이 거듭되면서 타지에서 바벨론 성으로 도피해 온 귀족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벨론이 마지막까지도 그런 국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아 니라 그 많은 사람들 중 왕의 비정상적인 행동에 간언하는 자가 전혀 없었을 만큼 바벨론의 상류 층 전체가 패역하고 부패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한 나라가 멸망할 시기가 가까울 때에 자연 스럽게 나타나는 말기적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벨사살이 잔치를 할 때에 하나님의 전의 기명들로 술을 마시는 지극히 불경스러운 행동을 한 것 은 술에 취해 취기로 한 행동이 아니라 벨사살이 불경을 저지른 핵심 원인은 부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증거된 여호와가 세계 역사의 절대 주권자라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부인하고 자신의 권세가 절대적이며 고레스의 공격으로부터 바벨론을 얼마든지 수호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과시하기 위 한 지극히 교만된 마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3이에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성소 중에서 탈취하여 온 금 그릇을 가져오매 왕이 그 귀족들과 왕 후들과 후궁들과 더불어 그것으로 마시더라. 4그들이 술을 마시고는 그 금, 은, 구리, 쇠, 나무, 돌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니라.’ 여기서 금은구리 쇠 나무 돌로 만든 신들이란 바벨론의 온갖 잡신 들을 총칭하는 것입니다. 이 잡신들을 찬양하며 술에 취했다는 말을 통해 고성방가하며 음란한 행동을 자행하는 광란의 광경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동시에 벨사살과 일천의 귀인들이 이럴 때에 왜 하필이면 하나님 전의 기명들을 가져 오게 해서 술을 마시며 우상들을 찬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얼마나 고이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사탄 은 개인이나 국가를 망하게 하는 자입니다. 사람들은 죽으려고 발광을 합니다.
셋째로 왕궁 벽에 나타난 신비한 손가락(5-16)
‘5그 때에 사람의 손가락들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석회벽에 글자를 쓰는데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본지라. 6이에 왕의 즐기던 얼굴 빛이 변하고 그 생각이 번민하여 넓적다리 마디 가 녹는 듯하고 그의 무릎이 서로 부딪친지라.’ 그 때에 무리가 술에 취해 성전 기명 모독, 음주, 향락 등 점차 광적인 향락 상태로 고조되어 가던 그들의 악행이 우상숭배로 절정에 이르렀던 바로 그 때에 하나님의 심판이 선언되었습니다. 바벨론 제국의 궁극적 원인이 절대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모독하고 도전한 데 있음을 선명하게 드러내어 줍니다. 손가락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 편의 석회벽에 글자를 쓰는 것을 보고 왕이 얼굴 빛이 변하고 번민하여 넓적다리가 녹는 듯 하고 무릎이 서로 부딪칩니다. 세상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 글을 쓰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사람들은 촛대 맞는 편 흰 분벽 위에 있는 글을 촛불로 인해 잘 볼 수 있었습니다.
이 때에 벨사살이 공포에 싸여 소리질러 말하기를 바벨론 박사들을 불러 들이라고 했습니다. 그 들이 왕 앞에 서자 왕이 말하기를. “저 글을 읽고 뜻을 풀어주는 사람은 자주색 도포를 입혀 주고 금목걸이를 걸어주며 이 나라에서 셋째 가는 높은 자리에 앉혀주리라.” 제일 먼저 불러들인 사람 들은 바벨론 박사들이었습니다. 벨사살은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의 징계로 정신 이상으로 일정 기 간 동안 왕위에서 쫓겨났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 사건을 예언하였던 다니엘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벨사살이 어째서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가장 믿을 만 한 다니엘을 부르지 않았으며 태후의 깨우침이 있은 후에야 다니엘의 존재를 기억하게 되었을까 요?
벨사살은 유대 사람을 경멸하였을 것입니다. 아마도 왕권이 바뀌면서 다니엘과 유대인들을 질투 하고 미워하던 사람들이 벨사살 왕에게 좋지 않은 말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벨사살 정권 하에서는 다니엘이 실권에서 물러났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연회에 참석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사람을 경멸하였고 유대의 하나님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입니다.
왕의 박사들이 다 들어 왔으나 역시 한 사람도 그 글을 알거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박 사들이 홀연히 나타난 손가락이 쓴 글자를 해석하지 못하자 불안과 공포가 급증했습니다. 연회 에 초대된 귀인들도 혼비백산하여 놀라 동요하고 혼란에 빠져 그리하여 흥겨움으로 인해 소란 하고 떠들석 하던 분위기는 멈추어지고 연회장은 갑자기 불안감으로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바벨론의 박사들이 그 글을 해석하지 못하자 분위기는 완전히 동요와 혼란의 상태에 이르렀습 니다. 이 때에 태후가 소란한 연회장에 대해 듣고 연회장으로 들어 왔습니다.
이 태후는 본래는 연회장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2절에서 벨사살왕의 왕후들과 빈궁들이 잔치에 참여했다고 했으니 벨사살 왕의 왕비는 아닙니다. 아마도 벨사살의 어머니 왕후일 가능성이 큽니 다. 어머니 태후는 아버지 나보니더스의 아내로서 바벨론 궁에 있지 않고 남편을 따라 테이마 (Teima)에 머물고 있다가 나보니더스가 이 때쯤에는 바벨론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왕비가 다니엘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며 다니엘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 아 그녀는 느부갓네살의 딸인 나보니더스의 아내요 벨사살의 어머니인 니토그리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태후가 이 일로 번민하거나 얼굴이 파래질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태후는 다니엘을 불러 글자 를 해석하게 하면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될 것이라 했습니다. 그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사 람이라고 다니엘을 벨사살 왕에게 소개합니다.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 왕 때에 있었던 자인데 다 니엘은 신들이 가지는 지혜를 가진 자요 느부갓네살 왕이 바벨론의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 와 점쟁이의 어른을 삼은 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사람이 벨드사살이라 이름을 가진 이 다니엘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능히 꿈을 해석하며 은밀한 말을 밝히며 의문을 파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은 다니엘의 바벨론 식 이름인 벨드사살과 왕의 이름인 벨사살이 비슷하 고 뜻도 비슷합니다. 다니엘은 본래 히브리식의 이름이며, 벨드사살은 궁중 교육 시절에 환관 장으로부터 받은 바벨론식 이름입니다. 벨드사살이란 뜻은 ‘벨 신이여 그의 생명을 지키소서.’ 이며 벨사살의 뜻은 ‘벨 신이여 왕을 보호하소서’입니다. 이렇게 해서 벨사살이 다니엘을 불렀 습니다. 그리고 묻기를 ‘네가 우리 부왕이 유다에서 사로잡아 온 유다 자손 중의 그 다니엘이냐’ 고 묻습니다. 다니엘을 향한 벨사살의 말이 참으로 밉살스럽습니다. 태후의 소개로 불러들인 다 니엘에게 질문하는 벨사살의 태도가 몹시 거만합니다. 지금 벨사살에게 중요한 것은 다니엘의 출신이 아니라 바벨론의 그 누구도 해석하지 못하고 있는 분벽에 쓰인 글자의 의미를 알아내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엉뚱하게 다니엘의 출신을 거론함으로써 은연 중에 포로 출신의 노인에게 도움을 받고 싶지 않다는 오만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편 이 대화에서 밝혀진 것은 벨사살이 이제야 다니엘과 첫 대면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2그분의 아들이신 임금님께서는 그것을 다 아시고도 겸손해지기는커녕 23오히려 하늘의 대 주재를 거역하시고..’ 22절에서 보여 주듯이 벨사살 왕은 느부갓네살 시대에 행하였던 다니엘의 행적들을 다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벨사살은 이제야 다니엘과 첫 대면을 한다는 것은 그 가 다니엘을 얼마나 경원시 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의 은인이요 느부갓 네살이 정신병으로 권좌에서 쫓겨 났을 때에 왕의 자리를 지키고 나라를 지킨 일등 공신을 이제 야 만난다는 것은 벨사살이 얼마나 무능하고 어리석은 인간인가를 보여 줍니다. 지혜자는 지혜자 를 찾아 가까이 해야합니다.
‘16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즉 너는 해석을 잘하고 의문을 푼다 하도다 그런즉 이제 네가 이 글을 읽고 그 해석을 내게 알려 주면 네게 자주색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네 목에 걸어 주어 너를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리라 하니’
넷째로 왕궁 벽에 쓰인 글자를 다니엘이 해석(17-29)
‘17다니엘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의 예물은 왕이 친히 가지시며 왕의 상급은 다른 사람 에게 주옵소서 그럴지라도 내가 왕을 위하여 이 글을 읽으며 그 해석을 아뢰리이다.’ 다니엘은 벨사살 왕이 제공하겠다 한 상을 마다한 이유로서 세가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다니엘 은 본래 재물이나 권세에 얽매이지 않고 청렴 결백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다니엘 자신이 세상 의 재물이나 권세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오직 진리만을 말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입니다. 셋째로 바벨론은 하루 밤만 지나면 멸망할 것이므로 왕이 주는 상은 하루 밤 만에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럴지라도 왕에게 글의 내용을 알려 주겠다고 했습니다.
‘18왕이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에게 나라와 큰 권세와 영광과 위엄을 주셨고 19그에게 큰 권세를 주셨으므로 백성들과 나라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의 앞 에서 떨며 두려워하였으며 그는 임의로 죽이며 임의로 살리며 임의로 높이며 임의로 낮추었더니’ 에서 다니엘은 먼저 느부갓네살 왕이 하나님의 징계로 정신병에 걸려 폐위되었다가 하나님의 주 권과 위엄을 알게 된 후 다신 회복되었던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느부갓네살 시대의 융성을 허락하 신 분이 벨사살 왕이 그토록 경멸하는 유대 민족의 하나님이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마음이 높아지며 뜻이 강퍅하며 교만을 행하므로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왕을 폐위시켰다고 했습니다.
다니엘이 이렇게 느부갓네살 왕의 행적에 대해 벨사살 왕에게 상기시키는 것은 그것이 분벽의 글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과 필연적인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느부갓네살이 교만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것처럼 그 보다 더 교만한 벨사살에 대한 심판도 필연적임을 교훈하기 위해서 입니다. 벨사살은 하늘의 주재이신 하나님을 거역하고 그 성전의 기명을 가지고 술을 마시고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신상들을 찬양하면서 벨사살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함으로 하나님께서 사람의 손가락을 보내 심판을 선언하시고 있다고 했습니다.
‘25기록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26그 글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 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27데겔은 왕을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함이요 28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하니’에서 ‘메네’라는 문자적인 의미는 ‘그가 세어서 끝나게 했다.’고 다니 엘이 풀이 했듯이 하나님께서 기간을 세어서 바벨론 왕국을 멸망하도록 하였다는 의미인데 메네 메네를 두번 반복함으로써 반드시 속히 될 것을 보여 줍니다. 데겔은 문자적으로 ‘너는 저울질을 받았다’ 또는 ‘너는 너무 가볍다’라는 뜻입니다. 베레스는 히브리음으로 페레스 (פְּרֵס)인데 이 단 어의 복수형은 ‘파르신(וּפָרָס)입니다.
이것을 한글 음역에서는 ‘바르신’으로 음역하였는데 그 앞에 ‘그리고’ 또는 ‘그러나’ 라는 뜻을 가 진 접속사 ‘우’가 결합되어 25절에서는 ‘우바르신’이라고 표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25절의 ‘우 바르신’과 28절의 ‘베레스’는 복수와 단수라는 차이를 가지고 있을 뿐 동일한 의미의 단어입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복수와 단수 사이에 의미상 큰 차이를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양자는 동일한 단어 로 취급해도 무방합니다. 그리고 ‘바르신’은 또한 ‘바사인’이란 뜻도 가지고 있고 ‘나누다, 조각을 내다’란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사가 바벨론을 멸망시킨 사실과 오묘하게도 연결되고 있습니다.
‘29이에 벨사살이 명하여 그들이 다니엘에게 자주색 옷을 입히게 하며 금 사슬을 그의 목에 걸어 주고 그를 위하여 조서를 내려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니라’에서 다니엘의 해석이 벨사살 왕 에게 아주 불리했지만 일천명의 귀족들 앞에서 한 약속이기에 자신의 제안대로 다니엘에게 상금 과 셋째 치리자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벨사살은 그 날 밤에 죽임을 당합니다.
다섯째로 왕궁 벽에 쓰인 글자 예언의 성취(30, 31)
‘30그 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31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 그 때에 다리오는 육십 이세 였더라.’
여기서 우리는 신 바벨론제국의 멸망과 멸망의 과정을 살펴보면서 성경의 놀라운 예언을 알아보 겠습니다. 바벨론은 오랜 세월 동안 존속해 왔습니다. 최초 바벨론은 니므롯이 창시자 였으며, BC 18세기, BC16세기의 고대 바벨론은 함무라비왕 때 가장 왕성했습니다. 그 이후에 점점 약해져 앗 수르에 멸망을 당합니다. 바벨론은 멸망은 했지만 일부가 살아남아서BC 626년 나봇폴라살은 갈 대아인을 모아 신 바벨론을 건설합니다. 그 아들 느부갓네살 왕 시대에 와서 바벨론제국은 강대국 이 됩니다. 바벨론제국의 성은 시날평야의 유브라테스강을 중심으로 세워졌습니다. 바벨론성은 유 브라테스강이 한 가운데로 흘렀고 바벨론성에 도착한 유브라테스강은 세 갈래로 나누어져 흘렀습 니다. 한 줄기는 바벨론성 안으로 흐르고 두 줄기는 바벨론성 주위를 감싸고 돌아서 흐르게 하였습 니다. 이렇게 한 것은 누구도 성벽에 접근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성벽의 두께가 30m인데 이 30m는 10층 건물 높이 입니다. 성곽은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집니다.
성벽의 높이는 약120m인데 성벽은 이중으로 되어 있고 성벽 둘레로는 유브라테스강이 흘렀습 니다. 성벽의 흙은 해자를 판 흙으로 벽돌을 구워 만들었고, 성벽의 벽돌은 콜타르를 사용했습니 다. 성벽 위에는 양쪽에 가옥들이 마주 보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양편 가옥들 가운데 4두마차가 지나갔습니다. 정말 대단한 바벨론 성의 규모입니다. 바벨론 도성은 성안의 집들이 3-4층 건물들 이 밀집되도록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난공불락의 성이 무너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 습니다. 그렇다면 난공불락의 바벨론성이 어떻게 해서 무너졌겠습니까?
바벨론 성이 어떻게 쉽게 무너졌는가 하면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바벨론 성을 공격하려고 왔는 데 성벽의 높이도 문제이지만 가장 큰 문제는 성주위로 돌아 흐르는 급한 물살이었습니다. 고레스 왕이 유브라데스 강물을 건너다가 자신의 마차를 끄는 말 중에 아주 아끼던 백마(神馬)가 물에 휩 쓸려 죽었습니다. 이에 격분한 고레스가 말하기를 ‘내가 이 강물로 하여금 ‘여자들이 무릎을 적시지 않고도 건널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맹세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군사들을 시켜서 강 양쪽에 180갈래 로 나누어 유브라데스강의 물줄기를 360갈래로 나누었습니다. 이런 고레스의 대단한 고집과 집 념으로 강물의 수위가 낮아지면서 그 동안 보이지 않던 성안으로 들어가는 유브라데스의 강줄기가 보인 것 입니다.
그곳으로 군사가 들어가면서 바벨론 성이 힘 없이 함락되었습니다. 벨사살왕은 적이 성안으로 들 어오는 줄도 모르고 주색잡기에 정신이 없다 보니 힘 한번 쓰지 못하고 그 화려했던 바벨론 제국은 한 순간에 멸망을 당했습니다. 이 놀라운 역사가 성경에 예언되었습니다. 고레스가 바벨론 성을 무 너뜨릴 것을 성경은 이미 고레스가 태어나기 전에 고레스란 이름을 지어주고 고레스의 앞길을 평 탄케 해주겠다고 예언했습니다. 이사야 44장 26절~28절에,
‘내 종의 말을 응하게 하며 내 사자의 모략을 성취하게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거기 사람이 살리라 하며 유다 성읍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될 것이라. 내가 그 황폐한 곳들을 복 구시키리라 하며 깊음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마르라 내가 네 강물들을 마르게 하리라 하며 (유브 라데스 강물이 마르리라),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 하리라.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네 기초가 세움이 되리라.’라고 예언되었습니다.
이사야45장 1절~4절에, ‘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 받은 고레스의 오른손을 잡고 열국으로 그 앞에 항복하게 하며 열왕의 허리를 풀며 성 문을 그 앞에 열어서 닫지 못하게 하리라. 내가 고레스에게 이르기를 내가 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케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서 너로 너를 지명하여 부른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 알게 하리라. 내가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 니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 이렇게 신 바벨론제국의 멸망과 멸망의 과정이 페르시아 고레스왕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렇게 할 일들을 예언한 성경은 확실한 예언입니다. 바벨론성을 어떻게 무너뜨릴 것을 이미 성경은 그 방법을 기록했습니다. 유브라데스 강 물줄기를 막아서 마르게 하고 다른 곳으로 돌릴 것을 고레스가 태어나기 전에 예언했습니다.
바벨론제국이 멸망함으로써 느부갓네살에게 보이셨던 신상의 꿈을 통한 예언의 일부와 벨사살 과 그 신하들에게 나타난 손가락으로 쓴 글의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역사 속에서 바벨론 제국 은 완전히 멸망하고 이제 은으로 된 가슴과 팔, 곧 메대 바사 제국이 세계를 제패한 것입니다. 이제까지 바벨론을 정복하고 벨사살 왕을 죽인 왕이 바사의 고레스인 줄 알았는데 난데 없이 메 대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다고 합니까? 여기서 우리는 고레스와 다리오의 관계를 알아 보기 로 하겠습니다. 이 다리오는 역사학자들이 메대 나라의 다섯번째 왕인 카악사레스 2세로 봅니 다. 카악 사레스 2의 아버지인 아스티아게스 왕은 슬하에 두 남매 카악사레스와 딸 만데인을 두었는데 만데인을 바사국왕 캄비세스와 결혼시킵니다. 이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자가 고레스 2세입니다.
바벨론의 멸망
인류 중에서 가장 뛰어난 그룹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함께 모여 혁신적인 기술로 벽돌과 역청을 발견해서 사람들 앞에 내놓았을 때 인류는 눈부시게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돌을 대신해서 벽돌을 쓰고 진흙을 대신해서 역청으로 건축을 하니, 이제는 그 수준이 도시와 빌딩을 건설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탁월한 엘리트 그룹의 명성은 온 땅에 퍼졌고 그 능력으로 인류 위에서 군림합니다.인류는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끝도 없이 하늘까지 올라갈 듯 합니다.하나님의 보좌까지 올라가려는 그들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능력과 명성으로 눈이 뒤집혀 창조주를 넘어서 정신없이 질주하는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위험한 절벽 앞까지 왔는지 모르고 있습니다.결국 창조주께서 친히 내려오셔서 급히 그들의 언어를 흩으시니 서로 말이 안통합니다.소통이 안되니 더 이상 진전하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져 바벨에서 쌓던 높은 성은 미완성으로 끝났습니다.후에 그곳에는 바벨론 이라는 이름으로 제국이 건설됩니다.인류의 가장 탁월한 DNA를 물려받은 후손들은 그 능력으로 큰 성 바벨론을 건설하였습니다.인류의 생활을 움직이는 모든 자원은 그 성으로부터 나옵니다.큰 성 바벨론은 천박하리 만큼 사치로 잔뜩 꾸민 화려함의 극치와 막강한 영향력으로 온 세상을 사로잡고 있었습니다.땅의 사람들이 바벨론을 중심으로 사방에서 몰려듭니다.땅의 임금들, 부자들은 최상품의 것들로 즐기며 누리기 위해서 오고, 온 땅의 상인들은 물건을 사고 팔기 위해서 옵니다.크고 견고하고 왕성한 큰 성 바벨론, 바벨론이 무너지면 온 세상이 함께 무너지겠지요.온 세상이 멸망하기 전에는 결코 무너질 수 없습니다.그런데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납니다. 결코 무너질 수 없는 큰 성 바벨론이 무너집니다.큰 성 바벨론은 아주 큰 힘으로 맷돌 같은 돌을 바다에 던져서 다시는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복구할 수 없습니다. 완전한 멸망입니다.큰 성 바벨론이 어쩌다 저렇게 되었을까요?강성한 부와 명성과 영광으로 영원할 것 같던 큰 성이 멸망하다니!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그러나 큰 성의 멸망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게 아니라 이미 예고된 멸망이었습니다.큰 성 바벨론은 음녀의 이름입니다.어린 양의 신부, 교회인 거룩한 성 예루살렘과 대조되는 도시입니다.음녀 바벨론은 짐승을 타고 있었습니다.짐승은 마귀가 준 권세로 온 세상을 통치하는 왕입니다,(단 7:17, 계13:2)큰 성 바벨론은 그 짐승을 타고 앉아서 온 세상 위에서 군림하던 강한 힘입니다.그러나 급기야 그 짐승은 자기를 타고 있던 음녀를 미워해서 망하고 벌거 벗겨 물어 뜯어 불로 아주 살라 버린 것입니다.시간이 지나면 악은 자멸합니다.음녀 바벨론은 그렇게 짐승에 의해서 멸망했습니다.바벨론의 멸망은 짐승과 마귀와 마귀에 속한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멸망할 것을 예고합니다.온 땅은 멀리서 큰 성 바벨론이 불타는 모습과 그 연기를 보면서 두려워하고 애통합니다.영원할 것 같았던 큰 성 바벨론은 세상 속에서 한 점 티끌 같은 재만 남기고 사라졌습니다.바벨론이 불타는 연기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2.바벨론 멸망부터 페르시아에 의한 예루살렘 재건까지
잠깐 바벨론의 왕들에 대한 설명을 하자면
느브갓네살의 아들 마르둑이 2년간 다스렸지만 마르둑을 살해한 마르둑의 매부 네리글리살과 네리 글리살의 아들 라바시 마르둑이 나라를 다스리다가 신하들에게 암살당하는데
그때 느부갓네살의 집안이 아닌 나보니두스가 왕권을 차지하게 됩니다
[나보니두스=하란 출신 귀족의 아들이자 느부갓네살 이후 가장 유능한 통치자로 평가받음]하지만 여기서 신관[종교]이 문제가 되는데
느브갓네살과 그의 집안 그리고 바벨론 백성은 ‘마르둑’이라는 신을 섬기지만
나보니두스는 ‘신(sin)’이라는 신을 섬기고 있었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느브갓네살이 섬긴 신 = 마르둑[태양신] 나보니두스가 섬긴 신= sin[달의 신]
바벨론의 멸망
느브갓네살집안과 바벨론 사람들이 나보니두스와 그의 아들 벨사살보다 오히려 페르시아의 고레스 쪽으로 마음을 돌립니다 이 당시 벨사살은 이미 바벨론 국민들에게 부적당한 통치자로 낙인이 찍혀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벨론 외의 바벨론 통치 하에 있던 나라들에게도 실망을 안겨주었었는데
바벨론은 포로를 자기 나라로 잡아가서 나라를 건설하는 노동을 시켰고
정복지에 남겨둔 사람들로부터는 세금을 받아 바벨론 성 건축에 충당했는데
바벨론 정부에 실망했던 사람들은
오히려 페르시아인들을 환영했고 아무런 저항도 없이 바벨론을 흡수 할 수 있었습니다
페르시아의 고레스(키루스2세)는 바벨론을 침략해 오면서 티그리스 강의 오피스에서 이미 승기를 잡고 바벨론 성으로 전투도 없이 무혈입성 할 수 있었습니다 이미 바벨론의 백성은 벨사살을 미워하고 오히려 고레스에게 희망을 두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설명했던 손가락환상이 보였던 날 다니엘이 해석을 해 준 그 날 저녁 벨사살이 죽음으로 인해 바벨론은 끝
이 납니다
단 5:30 그날 밤 칼데아인들의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고
5:31 메디아인 다리오가 그 왕국을 취하니 약 육십이 세였더라.
참고로 ‘유대인’이란 말은 바벨론이 여러 나라에서 끌어온 각 나라 사람들을 구분하며 남유다 사람들을 그렇게 부르면서 시작된 말입니다 아브라함때는 히브리인 야곱때부터 이스라엘 유대인은 바벨론의 끌려온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사람을 구분하기 위해 유대인이라 명칭이 불려지게 됬습니다
3 [다니엘의 예언데로 바벨론은 페르시아에 멸망]……하게 되는데 과정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앗시리아 제국이 멸망했을때 4개의 나라가 공존하게 되는데 오리엔트에 이집트 소아시아의 리디아 이란 고원의 메디아(메데) 메소포타미아의 신바빌로니아(바벨론)이 있었습니다
[오리엔트=이란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팔레스타인 ·아르메니아 ·소아시아 및 아라비아와 이집트를 포함한 지방을 가리킨다]유럽계의 메데와 인도계의 바사(페르시아)가 아케메네스 왕조의 키루스2세(고레스)왕에 의해 bc550년 하나의 페르시아로 통합됩니다 그리고 페르시아인들이 밤에 바벨론에 쳐들어 가는데
바벨론은 포로를 자기 나라로 잡아가서 나라를 건설하는 노동을 시켰고
정복지에 남겨둔 사람들로부터는 세금을 받아 바벨론 성 건축에 충당했는데
바벨론 정부에 실망했던 사람들은 오히려 페르시아인들을 환영했고 아무런 저항도 없이
바벨론을 흡수 할 수 있었습니다 [위에 바벨론 멸망과 같은 이야기]
다니엘서 7장에서 곰이 갈빗대 3개를 문다는 것과 그 3개의 갈빗뼈가 페르시아의 서쪽과 북쪽과 남쪽이라는 다니엘서8장에 말씀처럼 페르시아는 북bc546/리디아 서bc539년/바벨론 남bc525년/이집트를 정복하면서 bc525년 오리엔트 대제국을 건설합니다.
페르시아의 고레스2세는 바빌로니아의 포로였던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내고 바빌로니아 제국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완전히 파괴된 솔로몬성전을 재건축하는 것을 허락합니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고레스 칙령’입니다
에스라에 설명되어 있는 고레스 칙령
1:2 “페르시아의 코레스왕이 이같이 말하노라. 하늘의 주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왕국들을 내게 주시고 내게 명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있는 전을 그를 위하여 건축하라 하셨도다.
1:3 그의 모든 백성 중에 너희 가운데 있는 자가 누구냐? 그의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시기를 바라노니, 그는 유다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예루살렘에 계신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의 전을 건축할지니라. (그는 하나님이시니라.)
1:4 그가 기거하는 어느 곳에라도 남아 있는 자는 누구든지, 그의 고장의 사람들로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자원하는 예물 외에도 은과 금과 물건들과 짐승들로 그를 돕게 할지니라.” 하였더라.이미 자신이 통치하기 100년도 훨씬 전인 bc756년에 쓰여진 이사야서에서에 먼저 이 일이 예언되었었습니다.
이사야
44:28 코레스에게 말하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내가 나의 모든 기쁨을 이행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게도 말하기를 “너는 재건되리라.” 하고 성전에게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이라.
45:1 주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코레스에게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그의 오른손을 잡았으니, 민족들로 그 앞에 항복케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겠으며 두 짝 성문들을 그 앞에 열어서 닫지 못하게 하리라.
고레스 왕은 자신을 세워준 하나님[고레스는 하나님의 참지식은 없었지만 예루살렘에 있는 하늘의 신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란 견해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참 지식은 없더라도 아래 말씀은 이사야서의 말씀을 보고 이야기를 하였다는 견해들이다]
에스라1:2 “페르시아의 코레스왕이 이같이 말하노라. 하늘의 주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왕국들을 내게 주시고 내게 명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있는 전을 그를 위하여 건축하라 하셨도다.
고레스의 명령에도 유대인들은 불모지와 같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포로로 잡혀갈 때 그랬던 것처럼 귀환도 한번에 이루어지지 않고 크게 세차례에 걸쳐서 이루어집니다.
제1차 예루살렘 귀환은 bc538년 스룹바벨을 선두로 4만명이 4개월에 걸쳐 유대로 돌아오게 되어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물을 올렸으며 성전을 재건하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의 적대감 때문에 성전 재건공사가 중단됩니다 [스룹바벨은 고레스 왕때 1차로 갔었고 성전짓는 것이 중단되었다가 결국 그 성전은 다리오에 왕때 완성된다 스룹바벨은 다리오의 호위직을 맡았으며 어릴 때부터 친구사이였다고 한다]
1차 포로 귀환자들[스룹바벨 포함]이 안타깝게도 성전의 기초 공사를 시작하다가 사마리아인들의 방해로 성전 건축을 중단하게 되었던 것은 사마리아인들이 유대인 귀환 공동체가 성전을 짓는 것이 아니라 성벽을 짓는다는 거짓 보고를 페르시아 왕에게로 보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후 중단된 성전 건축은 다리오(다레이오스)가 페르시아의 왕이 되고 나서야 재건되고 성전의 재건에 필요한 모든 경비까지 페르시아 왕궁에서 감당한다고도 합니다
이유는 페르시아의 초대 왕 고레스(키루스2세) 왕의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약속이 담긴 문서까지 발견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리오의 명령이 내려지자 그토록 성전 방해하던 자들이 달려와 오히려 성전 건축을 도왔으며
마침내 불타 없어졌던 예루살렘 성전이 솔로몬 때와 비교해서는 초라하지만 그래도 다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것이 두 번째 예루살렘성전이고 헤롯이 지은건 이 성전의 증축입니다
어쨌든 고레스왕의 뜻을 이어받은 새로운 왕 다리오 덕분에 정책과 자금 원조를 계속해서 bc515년에 성전을 완공할 수 있게 해주어 성전에서 유월절을 지킵니다
이 후 다리오는 그리스를 점령하러 갔다가 ‘마라톤 전투’에서 패배하고 돌아오게 되고
그가 통치하던 말년에 캄비세스[고레스와 다리오 중간에 있던 왕]에 의해 정복당한 이집트가 반란을 일으키가 다리오는 이집트에 대한 응징을 준비했던 중에 bc486년 36년간의 재위를 끝으로 죽고 맙니다 그 뒤를 이어 다리오의 아들 아하수에로(크세르크세스 영화 300에 나오는 왕) 왕이 페르시아의 4번째 왕이 됩니다
이때 300영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페르시아는 가장 강력했던 나라이고 페르시아의 전성기때입니다
우리는 이때 에스더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하수에로왕이 [에1:10절-12절]에서 왕후 와스디를 불러 백성과 지방관들에게 자랑하려 했었는데
갈대아 주석가들에 의하면 이때 아하수에로는 왕후의 나체를 보여주려 했다고 기록하고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에스더왕비가 출현하게 되는데 하만이 유대인들을 몰살시키려고 했다가 왕비 에스더에 의해서 역전당하는 일인데 이걸 지금도 기념하여 지키고 있는 것이 부림절입니다 [7절기는 아니지만 10절기에 속합니다]
부림절은 12월 14일과 15일이고 이틀에 걸쳐 잔치를 베풀고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날로 기념합니다
말씀을 낭독하고 기뻐하며 부림전 절에는 에스더가 금식한 것을 생각하며 금식하고 부림절때는 에스더서를 읽고 기뻐하는데
제2차 예루살렘 귀환은 bc458년 율법에 통달한 제사장이자 율법학자인 에스라가 성전에 제물을 바치고 재판을 하라는 왕의 아닥사스다 왕(bc465-423)의 위임장을 가지고 여러 가족을 이끌며 예루살렘에 도착합니다
신약의 포인트= 산헤드린 공회[바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기 전 심문했던 공회]가 갖는 권한 가운데 하나가 ‘재판권’인데 산헤드린 공회의 구성원이 유대 출신 페르시아 총독들과 장로들과 제사장들이었음에서 알 수 있듯이
산헤드린 공회의 재판권은 아마도 에스라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된다
산헤드린 공회의 주체는 유대출신 페르시아 총독들[스룹바벨총독과 느혜미야총독] 과 제사장 가문과 제사장 가문은 아니지만 평민
귀족들이 동맹을 맺음으로 가능하게 된 것이고
그들은 페르시아에서 유대로 귀환한 후에 공식적으로 산헤드린 공회를 출범했는데 71명으로 구성되었으며 고위 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원로들이 대제사장을 통해 주도권을 행사하며 유대의 지도부로 존속했다
산헤드린 공회는 ad6년 유대의 하스몬 왕조가 끝나고 로마의 속주가 되면서부터 유대의 최고 댚기구로 인정받았다
더 나아가 산헤드린공회는 유대의 최고 재판국으로까지 승격되었고
이러한 산헤드린 공회는 유대의 최고 재판국으로까지 승격되었고 중요성이 강화되면서 전 세계의 모든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도 모두
산헤드린과 관계를 맺었다 유대 내에서는 산헤드린과 직무상 연결이 되지 않는 곳이 없었다
마26:59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사형에 처하려고 그에 대한 거짓 증거를 찾았으나
재판권은 산헤드린 공회에 있었고 예수님께 유죄 및 사형 판결을 내리고 그를 처형하기 위해 빌라도에게 끌고갑니다
그리고 bc445년에 아닥사스다 왕에게 술맡은 관원장이자 총독이였던[굉장한 고위급] 유대인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이 황폐하게 버려졌다는 소식을 듣고 성벽을 재건하러 가도 좋다는 허락을 얻게 됩니다 총독의 자격으로 예루살렘에 도착한 느혜미야는 우선 실태 조사를 하고 백성들에게 성벽 재건을 명령합니다
하지만 유대인이 강해지는 것을 두려워한 주변 지방의 지도자들은 성벽 재건에 반대하고,비웃거나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무력을 동원해 성벽 재건을 방해합니다. 이에 느헤미야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워주실 것이다”라고 격려하며 백성들의 동의를 얻어냈고 성벽 재건 공사와 방위 모든 면에서 빈틈이 없도록 백성을 조직하여 모든 방해공작에 대처합니다 이렇게 하여 성벽은 52일 만에 완성됩니다 그러나 황폐한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이 없자 유대의 각 지역에 사는 가족들은 제비를 뽑아 열 가족 당 한 가족이 예루살렘에 와서 살기로 결정해 예루살렘은 다시 사람 사는 도시와 같이 됩니다
그리고 이때 예루살렘 재건과 함께 종교의 부흥이 이루어지는데
그들이 포로기 동안 많은 학대와 무시를 받으면서 우리가 율법을 버려서 그렇게 되었다며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그 움직임에 부흥을 준 인물이 바로 에스라와 느혜미야이고
또다시 이방인의 영향력을 근절시키고 모세 5경에 대한 지식을 다시 살려내 삶에 적용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수문 앞 광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때 에스라는 연단 위에 서서 해뜰 때부터 해가 중천에 이르기까지 백성들 앞에서 엄숙하게 토라를 읽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느8:1 온 백성이 물 문 앞에 있는 거리로 한 사람처럼 모여 서기관 에스라에게 주께서 전에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니
8:2 제사장 에스라가 일곱째 달 일일에 율법책을 남녀 회중과 알아들을 수 있는 모든 자들 앞으로 가져가서
8:3 물 문 앞에 있는 거리에서 아침부터 정오까지 남자와 여자와 알아들을 수 있는 자들 앞에서 읽으니, 모든 백성의 귀가 율법책을 경청하더라.
그리고 이 시기에 회당이 생겨나게 되는데 회당은 성전처럼 제사를 드리는 곳은 아니지만
학교에 기능과 율법을 가르치는 곳이였습니다
신약 성경을 볼때의 포인트= 회당은 바벨론 포로기를 겪으며 페르시아로 인한
예루살렘 성전 재건과 함께 율법의 중요성을 깨닿게 되어
율법을 가르치기 위해 만들어지게 되었다.
당시 페르시아 풍경
간편요약
1.바벨론의 부정부패와 다른 종교로 인해 분열이 생기고
이때 메데의 다리오가 바벨론을 멸망시킴
2.메데와 바사[페르시아]를 고레스왕이
하나의 페르시아로 합침
3.페르시아의 고레스는 자신이 통치하기
200년전인 이사야서의 예언을 보고
하나님이 자신을 세우신 것을 알게 됨
4.그래서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지으라 는 명령인
고레스 칙령을 내림
5.고레스 왕때 제1차 귀환이 이루어지는데
스룹바벨이 선발로 나서지만
사마리아인들의 거짓말로 성전 재건이 중단됨
6.다리오 왕때 다시 고레스 왕이 한 말을 보여주면서 성전재건이 재게되고 성전이 재건이 됨
7.다리오 다음왕인 아하수에로때 에스라 사건이 발생하고 거기서 부림절이 유례된다
8.아하수에로 왕 다음왕이 아닥사스다 왕이며 이때 2차 귀환이 이루어지는데
에스라가 ‘재판권’에 권한을 갖게 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데
이때 큰 말씀의 회복이 이루어지며 또 ‘재판권’을 갖는 ‘공회’가 생기고 이것이 예수님을
심문했던 산헤드린 공회의 유레가 되며 또 말씀을 전하는 ‘회당’이 생기게 된다
9.같은 왕인 아닥사스다 왕때 술따르는 관원장 느혜미야가 다시 예루살렘을 오게 되어 52일만에
성벽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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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바빌론의 모습
바빌론(아랍어: بابل, 아람어: ܒܒܙܠ, 히브리어: בבל)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고대 도시로 바빌로니아 제국의 수도였다. 현재의 이라크 바빌 주 힐라에 있는 유적으로 바그다드 남쪽 80km 지점에 위치한다. 기원전 2300년경부터 고대 바빌로니아의 “성스러운 도시”로 기원전 612년 신 바빌로니아에 이르기까지 바빌로니아의 중심 도시로 가장 위대한 도시로 여겨졌다.
바빌론의 공중 정원은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였다.
지도 [ 편집 ]
역사 [ 편집 ]
바빌론은 대략 기원전 20세기경 아무르인들이 메소포타미아 서쪽으로부터 남동쪽으로 이주하면서부터 이 지역에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1894년 아모리의 수무아붐이 최초로 세운 아모리 왕국의 도시로 시작해 기원전 18세기 유명한 함무라비대왕의 치세에 본격적으로 번성했다. 바빌론은 지리적, 상업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어서 고대 바빌로니아 왕국의 수도이자 중심지로 발전했다.
기원전 1595년경부터 대략 440년간은 카사이트 왕국의 지배를 받았고 도시이름은 “카르두니아시”로 개명되었다. 바빌론은 그 후 일어난 아시리아의 영향력아래서 계속 중요한 도시로 남아있었는데 바빌론의 정치적 지배권을 둘러싸고 아람인, 칼데아인 그리고 아시리아인들 사이에 분쟁이 계속되었는데 아시리아인이 비교적 관대한 정책으로 다른 민족보다 바빌론의 환영을 받았다.
아시리아 시기 [ 편집 ]
기원전 9세기부터 7세기 후반까지 바빌론은 아시리아 왕이 직, 간접적으로 통치했는데 칼데아 부족들이 바빌론을 침범해 수차례나 왕위를 찬탈했다. 특히 아시리아의 왕 센나케립 통치기간에 잇달은 칼데아인의 반란으로 통치가 어려워졌는데 칼데아 족의 새로운 지도자 무셰지브 마르두크는 바빌론 신전 재물로 용병을 사서 바빌론을 점령하였다. 기원전 689년 센나케리브는 다시 바빌론을 포위 공격해 9개월 만에 재탈환하고 이 때부터는 바빌론에 대한 유화책을 버리고 파괴와 약탈을 명령하였다. 신전과 마르둑 신상은 파괴되었고 버려졌는데 이는 메소포타미아인에게는 엄청난 종교적 충격을 주었고 이로 인해 결국 센나케리브는 암살당하고 만다. 센나케리브의 뒤를 이은 에사르하돈은 바빌론을 재건하고 주민들의 재산을 돌려주는 등 융합정책을 폈으나 항상 바빌론에서 반란의 빌미가 된 마르둑 신상은 바빌론에 두지 못하게 했다. 에사르하돈의 사후, 뒤를 이은 아들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났고 아슈르바니팔은 바빌론을 포위해 기원전 648년 함락시켰는데 공성전 당시 바빌론 성안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신 바빌로니아 시기 [ 편집 ]
아슈르바니팔이 죽은 후 기원전 626년 칼데아인 나보폴라사르는 바빌론을 점령하고 그곳에서 아시리아 세력을 몰아낸 후 신 바빌로니아 제국의 수도로 정했다. 뒤이어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치세때 바빌론은 대규모 토목공사와 건축으로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데 에메테난키 지구라트, 아직까지도 살아남아 베를린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이슈타르 문, 그리고 세계 7대 불가사의인 바빌론의 공중 정원도 모두 이때 건설된 것이다.
페르시아 시기 [ 편집 ]
기원전 539년 바빌론은 다시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에 의해 점령되는데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뒤를 이은 나보니두스의 실정으로 키루스는 거의 무혈입성하였다. 키루스 대왕, 다리우스 대왕으로 이어지는 아케메네스 왕조시절, 바빌론은 페르시아 제국의 행정적인 중심지로 이 시기가 바빌론이 가장 번성했던 시기로 기록된다. 비록 크세르크세스 1세 때 일어난 반란으로 잠시 마르둑 신상과 도시가 파괴되지만 바빌론은 페르시아 제국의 교육과 과학의 중심지로 바빌로니아의 수학과 천문학이 발달하고 고대 세계에서 가장 번영하고 위대한 도시로 부각된다. 현대 바빌론에서 중요한 고고학적 발굴은 모두 이 시기의 것이다.
헬레니즘 시기 [ 편집 ]
기원전 331년 바빌론을 점령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바빌론의 상업적, 종교적인 특별한 위치를 인정하고 신전의 복구와 무역육성을 위한 부두를 건설했다. 그는 바빌론을 그의 위대한 제국의 수도로 삼을 계획을 갖고 있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바빌론의 네부카드네자르 궁전에서 죽었다. 알렉산드로스이후 알렉산드로스 부하 장군들의 내분을 거쳐 바빌론은 기원전 312년 셀레우코스 왕조에게 넘어갔다. 기원전 275년에는 셀레우코스 왕조의 새로운 수도인 셀레우키아가 티그리스 강에 건설되고 바빌론의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키자 바빌론의 지위는 많이 약화되어 갔다.
기원전 141년 파르티아가 이 지역을 점령한 이후 사산조 페르시아를 거쳐 거의 900년동안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였으나 바빌론은 거의 잊혀지고 버려져 옛 영화를 잃어버리고 몇몇 문화적, 종교적인 언급속에 위대한 도시로만 기능하게 되었다.
현대 시대 [ 편집 ]
현재 수천 명의 사람들이 고대 바빌론 성벽 안에 거주하고 있으며 건축을 제한하는 법률에도 불구하고 거주민의 수가 늘어나는 추세이다.
각주 [ 편집 ]
↑ 위 지도에는
같은 위치에 표시되어 있다 위 지도에는 우바이드 (30°58′N 46°05′E)와 우르 (30°57′N 46°06′E)가같은 위치에 표시되어 있다
예배와 성경(41) – 바벨론 포로시대와 바벨론의 멸망
포로시대와 바벨론의 멸망
북이스라엘은 BC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고 남 유다는 BC586년에 바벨론에게 멸망하게 된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점령할 당시에 바벨론 군대에 의해 성전이 무너지면서 모든 것이 없어진다. 이때에 언약궤를 잃어버리게 되고 사람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된다.
당시 역사를 잠깐 살펴보면, 앗수르는 예레미야가 예언을 시작할 무렵에 무너지게 되었다. 바벨론의 왕위에 오른 느부갓네살은 통치 첫 20여년간을 반역을 일으킨 여러 주들을 제압하는 작업을 했다. 이 때 말썽을 일으킨 주들 가운데 유다가 들어 있었다. 당시 유다의 왕이었던 여호야김은 유다를 밀어주던 애굽이 세운 왕이었는데 느부갓네살은 그 왕을 그대로 두고 충성을 맹세케 한 후 볼모들을 포로로 잡아갔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 충성의 맹세를 무시하고 다시 애굽과 연합한다. 느부갓네살은 다시 군대를 이끌고 와서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예레미야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여호야김은 항복을 거부하였다. 결국 여호야김 왕이 죽고 여호야긴 왕이 왕위에 오르는데 한두달 통치후 예루살렘이 함락 되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게 된다. 유다의 왕위는 시드기야에게 이어졌으나 그 역시 애굽에 유혹되었다가 두 눈을 뽑히고 포로로 끌려가게 된다. 그 후 바벨론 군대가 다시 예루살렘에 와서 완전히 파괴하게 되는데 그 때가 BC 586년이다. 당시 살아 남은 시민 중 대다수의 무리가 바벨론에 사로잡혀 가고 유다 영토는 총독의 수하에 들어가게 된다.
유다에 잡혀간 사람들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포로로 비참한 삶을 산 것이 아니라 그 나라 국민의 일부로 자신의 전통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었다. 부를 쌓을 수도 있었다. 어떤 유대인들은 바벨론의 마르둑 신을 하나님보다 더 위대한 신으로 인식할 수도 있었다. 바벨론은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로 가득했고 여러 문화를 계속해서 접하고 살 수 밖에 없었으며 공용어인 아람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바벨론 성은 2중의 구조로 되어 있었다. 현재 이라크 수도인 바그다드 남쪽 60마일(약 100키로미터) 지점에서 발굴되었다. 크기는 거의 서울의 크기만 했다. 둘레는 54마일(약 90키로미터)로 한 변의 길이가 약 23키로미터 정도 되었다. 바벨론 성에도 서울의 한강처럼 유브라데스 강이 흘렀다. 유브라데스 강은 바벨론 성에 이르면서 세갈래로 갈라져 한쪽은 성 안으로 흐르고 두 갈레는 성 밖으로 돌아서 성벽에 접근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성 안으로 흐르는 물 덕분에 포위가 되어 밖으로 물을 구하러 나갈 수 없어도 물이 없어서 죽는 일은 일어날 수가 없었다. 성벽은 두께가 약 30미터 정도 되었고 높이는 120미터 정도 되었다. 성벽을 쌓은 흙들은 해자를 판 흙이었기 때문에 해자의 깊이가 성벽의 높이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성벽의 위에는 양쪽으로 집들이 있고 그 집들 사이로 4두 마차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였다. 성문은 청동으로 제작하여 모두 100개 정도가 되었다. 공성퇴 같은 무기들도 해자 때문에 가까이 접근할 수가 없어서 공격을 당할 염려가 없는 성이었다.
그러나 바벨론은 BC 539년에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에게 함락되게 된다. 원래 페르시아는 메데에 속한 작은 나라였다. 고레스의 부왕은 메데의 공주와 결혼하면서 평화를 유지했다. 고레스가 왕이 되면서 페르시아는 급속도로 성장하게 된다. 이전의 평화로운 관계를 계속할 수 없게 되자 메데와 페르시아는 전쟁을 하게 되고 페르시아가 승리하게 되면서 메데와 페르시아 왕국이 성립되게 된다(BC 550). 고레스는 메데를 피정복국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 승전국으로 만드는 정치적 수완을 보여준다. 바벨론은 페르시아에 위협을 느끼고 집단 방위체제를 구축하는데 이때 연합한 나라들이 바벨론, 애굽, 리디아였다.
바벨론을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공격하려고 왔는데 전혀 공격할 수가 없었다. 성벽의 높이도 문제이지만 성벽의 주위에 흐르는 물이 물살이 세서 다가갈 수가 없었다. 고레스 왕의 아끼던 말이 물에 휩쓸려 죽기도 했다. 이에 고레스가 격분해서 ‘내가 이 강을 여자들이 무릎을 적시지 않고도 건너갈 수 있게 하겠다’고 이야기 하고 병사들을 시켜서 강 양쪽에 180개씩 360개로 강줄기를 나누어버렸다. 이렇게 했을 때 강의 깊이가 얕아지면서 성안으로 들어가는 유브라데스 강의 물줄기가 보이게 되고 그곳으로 군사들이 들어가 바벨론이 무너지게 된다.
벨사살 왕은 고레스가 포위하고 있을 때에도 마음을 놓고 있었다. 어수선해진 백성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 옛 이스라엘 성전에서 가져온 금은 기명에 술을 부어 먹었다. 그때 벽면에 큰 손이 나타나서 ‘메네메네데겔우바르신’이라고 적은 그 날 밤, 고레스 왕이 진격하여 바벨론 성이 함락 되었고 고레스의 군대 장군 중에 메대 사람 다리오에게 그 성을 맡겨 통치하게 했다. 이사야와 예레미야가 특히 바벨론의 멸망에 대해 예언했는데 예언한대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사 13:1-14:23, 렘 50-5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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