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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5
1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 2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 3 여호와여 아침에 …
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12/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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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5 | KRV 성경 | YouVersion – Bible.com
시편 5 · 8여호와여 나의 원수들을 인하여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 · 9저희 입에 신실함이 없고 저희 심중이 심히 악하며 저희 목구멍은 …
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7/10/2021
View: 4219
2018/04/28(토) “시편 5:1-12” / 작성: 최영민
시편5편은 다윗이 하나님께 올려드린 기도입니다. 다윗은 기도의 첫 시작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1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
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5/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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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5편
시편 5편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관악에 맞춘 노래 시편 5:1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시편 5:2 나의 왕, …
Source: 392766.tistory.com
Date Published: 4/2/2022
View: 5507
시편 5편 & 성경주석 – BIBLE STORY
시편 5편 & 성경주석 · 1.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사를 통촉하소서 · 2.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
Source: bible-story.tistory.com
Date Published: 3/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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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시사.(시편 5편)
본문 : 시편 5편. 1.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2.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
Source: officer-kim.tistory.com
Date Published: 2/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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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말씀 – 시편 5편 / 개역개정 – CCM악보
시편 5편. 1.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2.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
Source: ccmakbo.tistory.com
Date Published: 3/4/2021
View: 9454
설교 – 시편 5편_주께 피하는 사람
시편 5편은 「다윗의 시」로 「영장으로 관악에 맞춘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영장」이라는 말은 「성전의 성가대를 관장하는 대장」을 말합니다. 곧 성가대 …
Source: lovebible.co.kr
Date Published: 6/1/2022
View: 6379
고난 중의 기도 (시 5) – 유평교회
시편 5편은 3편과 같이 ‘아침시편’으로 분류되지만(3절) 사실 내용상으로는 4편과 더욱 유사합니다. 4편에도 등장하는 악인들, 대적들로 인한 어려움 …
Source: achurch.or.kr
Date Published: 2/21/2021
View: 7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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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시편 5 편
- Author: 공동체 성경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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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1. 1. 14.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Bb2WKKD4jho
시편 5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관악에 맞춘 노래〕
1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2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3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4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1)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
5 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6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7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8 여호와여 2)나의 원수들로 말미암아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
9 그들의 입에 신실함이 없고 그들의 심중이 심히 악하며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그들의 혀로는 아첨하나이다
10 하나님이여 그들을 정죄하사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고 그 많은 허물로 말미암아 그들을 쫓아내소서 그들이 주를 배역함이니이다
11 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12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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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사를 통촉하소서 2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3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4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유하지 못하며 5 오만한 자가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6 거짓말하는 자를 멸하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고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7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인자를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리이다
2018/04/28(토) “시편 5:1-12” / 작성: 최영민
본문 시편 5:1-12
찬송가 337장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1-6절)
오늘 본문 시편 5편에는 표제어가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관악에 맞춘 노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 5편의 시기에 대해서 여러 학자들은 시편 3편, 4편과 동일하게 압살롬이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시편5편은 다윗이 하나님께 올려드린 기도입니다. 다윗은 기도의 첫 시작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1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다윗은 하나님께 나의 말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내가 묵상한 것을 헤아려 달라고 탄원합니다. 아들인 압살롬의 반역 사건으로 인한 위기 상황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암담한 상황이지만 하나님만이 알고 계심을 믿고 확신함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귀 기울이고 계심을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내뱉는 세미한 소리까지도 다 듣고 계십니다. 다윗은 왕으로서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로서 마음이 무너지고 슬펐습니다. 이러한 무너진 마음으로 하나님께 와서 헤아려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슬픈 마음을 토로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기도 중에 한나의 기도가 있습니다. 사무엘상 1장을 보면 아이를 가질 수 없어서 슬퍼하고 괴로워했던 한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한나는 엘가나의 아내였습니다. 그런데 엘가나에게는 또 다른 아내인 브닌나가 있었습니다. 한나는 엘가나의 사랑을 많이 받았지만, 아이가 없었습니다. 브닌나는 그런 한나를 격분시켰고 괴롭게 하였습니다.
한나는 원통한 마음을 갖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마음이 괴로워서 기도하고 통곡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오래 기도하면서 말할 힘조차 없어서 입술로만 계속 중얼거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한나의 모습을 보고 엘리 제사장은 술에 취한 줄로 생각했습니다. 이에 한나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무엘상 1장15절입니다.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한나는 슬픈 마음을 가눌 길이 없어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심정을 쏟아 놓았습니다. 사람은 몰라도 하나님만이 알아주시도록 소망하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나의 기도를 들었고, 이미 모든 상황을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한나의 마음에 평안을 주셨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평안을 주십니다.
지금 마음이 괴롭고 슬프십니까? 그렇다면 그 마음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오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안이 임할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하나님께 갖고와서 쏟아 놓았습니다. 2절과 3절 말씀입니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심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라고 고백하면서 자신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백성임을 고백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왕 되심을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과 삶의 일터를 다스려 주심을 인정하고 믿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부르짖으며 기도했습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자신의 한계를 하나님 앞에 고백하는 것입니다. 지금 상황을 해결해 주실 분은 하나님 한분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으로 밤을 보냈고, 눈을 뜨자 마자 다시 하나님을 찾으면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했습니다. ‘아침에 주께서,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새벽의 첫 시간을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는 사람은 오늘 하루가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해주신 하루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새벽에 도우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루의 첫 시간인 새벽에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시편 46편5절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하나님이 그 성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7-12절)
그렇다면 새벽에 도우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도할 때 얻는 기도의 유익은 무엇입니까?
첫째, 주님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게 될 것입니다. 7절 말씀입니다.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주의 풍성한 사랑, 이것은 헤세드로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을 뜻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풍성한 은혜와 자비를 힘입어서 주님의 집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경외하는 것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성전을 향하여, 주님께 집중하여 예배드림으로 내 삶에서 예배가 온전히 회복될 것입니다. 매일 매순간 주님의 풍성한 사랑과 크신 은혜가 내 삶을 다스릴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사람만 때로 광풍이 몰아치고 비바람이 불더라도 주님께서 여전히 나를 인도하고 계심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기를 대적하는 원수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겼습니다. 하나님의 도움만을 구하며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셔서 일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도했더니 주님께서 다윗의 마음에 평강을 주셨습니다. 부르짖었던 다윗의 기도가 기쁨의 찬송으로 바뀌었습니다.
새벽에 도우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도할 때 얻는 두번째 기도의 유익은,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이 내 삶에서 확장되어진다는 것입니다. 11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다윗은 기뻐한다는 의미의 표현을 세번씩 반복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중요하기 때문에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뻐하다 라는 세 단어는 뜻이 점점 확장되어 갑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기뻐서 큰 소리를 지르는 것이며, 기뻐 뛰며 의기양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꾸어 말해서 주께 향하는 기쁨이 주와 함께 하는 기쁨으로 커지는 것입니다. 주 안에 누리는 참된 기쁨입니다. 그리고 이 기쁨은 주를 위하는 기쁨으로 확장되어 갈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도피처로 삼아 주님의 날개 아래 머물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내 삶에서 고난과 어려움이 찾아올 때마다 하나님께 피하는 자들은 그때마다 안전함을 경험하며 이로 인하여 크게 기뻐할 것입니다. 만왕의 왕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것만큼 이 세상에 안전한 곳은 없기 때문입니다.
새벽에 도우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도할 때 얻는 마지막 기도의 유익은,
주님의 은혜가 큰 방패처럼 우리를 지켜준다는 것입니다. 12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
주님의 복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그래서 마지막 절인 12절 말씀은 하나님께서 의인을 향해서 이렇게 해 주시겠다 하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복을 줄 것이다, 큰 방패로 보호해 줄 것이다, 은혜로 지켜줄 것이다.’
이것은 우리를 향한 신실한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면 절망과 어려움 가운데 드려지는 우리의 기도는 소망과 감사, 찬양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거친 파도와 폭풍이 몰려와도 하나님의 방패가 우리를 지켜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사람만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어주신 삶의 자리에서 역설의 진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내게 해 주십니다. 이것을 기억하면서 오늘 하루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이시간 주님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신실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덮어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나의 왕 되시며, 나의 하나님 되시니 참 감사합니다. 새벽에 도우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신뢰함으로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과 기쁨이 내 삶에 가득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큰 방패와 같이 우리를 지켜주시는 주님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을 지켜 주시옵소서.
이시간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엎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어주신 삶의 자리에서 오늘 하루 역설의 진리의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다윗은 마음이 괴롭고 슬펐지만 하나님 앞에 나와서 나의 심정을 헤아려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기도할 수 있었습니까?
2. 새벽에 도우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신뢰하기 위해서 우리 삶에서 결단해야 하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3. 새벽에 도우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도할 때 얻는 기도의 유익은 무엇입니까?
4. 시편5편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어주신 삶의 자리에서 역설의 진리의 삶을 살기 위해서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작성: 최영민)
시편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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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5편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관악에 맞춘 노래
시편 5:1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시편 5:2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시편 5:3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시편 5:4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
시편 5:5 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시편 5:6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시편 5:7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시편 5:8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로 말미암아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
시편 5:9 그들의 입에 신실함이 없고 그들의 심중이 심히 악하며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그들의 혀로는 아첨하나이다
시편 5:10 하나님이여 그들을 정죄하사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고 그 많은 허물로 말미암아 그들을 쫓아내소서 그들이 주를 배역함이니이다
시편 5:11 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시편 5:12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와 같은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
시편 5편은 ‘아침기도’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아침에 일어나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시편 5편 구조
1-2절 내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3-7절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
8-11절 악인에 대한 징벌과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호
시편 5편 히브리어
강해
1-2절 내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시편 5:1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시편 5:2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시인은 여호와께 호소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부탁한다. ‘나의 말’은 곧 ‘나의 심정’으로 연결된다. 여기서 표현된 ‘말’은 대화가 아니라 히브리어 ‘칼’로 ‘소리를 지르다’는 뜻이다. 부르짖는 기도를 말한다. 의역하면 ‘여호와여 저는 이렇게 소리를 지르는 왜 당신은 귀를 기울이지 않고 저의 마음을 헤아려 주지 않습니까?’이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2절에서는 ‘여호와’(1절)가 ‘나의 왕 나의 하나님’으로 호칭을 바꾼다. 다시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기도한다. 1절과 2절은 반복법을 사용하여 강조한다.
나의 말(부르짖는)에 귀를 기울이고 – 나의 심정을 헤아리소서
내가 부를 짓는 소리를 들으시고 – 내가 주께 기도합니다.
1-2절은 저는 이렇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니 제발 저의 기도를 들어주세요.라고 말하고 있다.
3-7절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
3절은 심경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기도에 응답하지 않을 것 같던 주님에 대한 생각이 갑자기 확신으로 바뀝니다. 시인은 확신합니다. 자신이 아침에 일찍 하나님께 기도하면 들어 응답하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시편이 아침 기도로 불리는 이유가 3절에 들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침의 기도를 들으실 것을 확신하며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성경에서 아침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 기적을 베푸실 때는 대부분의 새벽이었습니다. 또한 탁월한 믿음의 소유자들은 새벽에 일어나 하나님의 일을 감당해했습니다.
출애굽기 14장 24절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과 구름 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애굽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출애굽기 14장 27절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밀매 새벽이 되어 바다의 힘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슬러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여호수아 6장15절 일곱째 날 새벽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전과 같은 방식으로 그 성을 일곱 번 도니 그 성을 일곱 번 돌기는 그 날뿐이었더라
시편 46장 5절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이사야 58장 8절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4절은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3절에서 갑자기 반전이 일어난 이유는 4절에 들어가 있는데, 하나님은 죄악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악이 주와 함께 하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아니 확신에 이른 것이다. 결국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은 5절에서 오만한 자들에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한다. 주의 목전은 원어적으로 주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6절에서는 좀더 강하게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킨다고 확신한다.
이제 시인은 주의 풍성한 사랑(חֶ֖סֶד 헤세드 7절)을 찬양한다. ‘주의 집’ 곧 ‘성전’으로 들어가 예배하기로 작정한다. 예배는 하나님께 엎드림, 하나님의 모든 행하심에 대한 철저한 신뢰다.
8-11절 악인에 대한 징벌과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호
마지막 3연은 하나님의 악인에 대한 심판의 택하신 백성들의 보호로 막을 내린다. 그들을 정죄하는 방법을 주의해 보자. 구조를 보면 8절과 11-12는 의인들에 대한 복이고, 중간인 9-10절은 악인들의 저주이다.
9절 그들의 입에서는 신실함이 없다. 즉 말을 자꾸 바꾼다. 거짓말을 한다는 뜻이다.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란 말은 입을 무덤의 돌로 표현하여 말만하며 그 안에서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뜻이다. 심중의 악과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란 말은 동일하다. 마지막 혀로는 아첨 한다는 말은 완벽한 하모니를 이룬다. 거짓과 썩은 냄새, 그리고 아첨까지 모두 포괄하는 거짓의 왕들이다.
시인은 그들의 거짓과 사악한 언어를 정죄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정죄하사 ‘자기 꾀에 빠지게(10절) 해달라고 간구한다. 자신이 꾀를 내었는데, 그 꾀가 자신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오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마치 에스더에 나오는 하만처럼. 자신이 하나님보다 지혜롭다 하는 자들을 자기 꾀에 빠진다. 아담과 하와처럼 말이다.
시편 10장 2절 악한 자가 교만하여 가련한 자를 심히 압박하오니 그들이 자기가 베푼 꾀에 빠지게 하소서
잠언 1장 31절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고린도전서 3장 19절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 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그러나’(11절)는 반전이다. 악인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은 ‘기뻐’한다. 두 번이나 반복되어 그들의 기쁨이 얼마나 더한지 말한다.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한다. 히브리시의 특징인 반복이 사용된다.
주께 피하는 자들은 … 기뻐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 주를 즐거워
기쁨과 즐거움이 교차한다. 이것이 주를 따르는 자들이 누리는 복이다. 12절에서 이것을 마무리 한다.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같이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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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5편 & 성경주석
<시편 5편 서론>
다윗의 시, 영장으로 관악에 맞춘 노래.
시 5편은 아침에 드리는 기도이다. 이 시는 저녁 기도문인 시 4편과 분위기가 동일하다. 아마도 두 시가 유사한 상황 속에서 쓰인 듯하다. 시인은 밤에 평온한 잠을 잔 후 아침에 일어나서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기 전에 이 기도의 말을 아뢴다(7절). 그는 악인들이 이기는 것을 결코 허락지 않으실 하나님이 분명 그를 신뢰하는 자들에게 충만한 기쁨을 안겨 주실 것임을 확신한다. 이 시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로 시작하여, 하나님께 대한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표현하고, 그 다음에는 삶의 어려운 문제들에 대한 하나님의 인도를 간청한 후에, 마지막으로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권고한다.
<시편 5편 개역한글>
1.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사를 통촉하소서
2.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3.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4.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유하지 못하며
5. 오만한 자가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6. 거짓말하는 자를 멸하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고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7.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인자를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리이다
8.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을 인하여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
9. 저희 입에 신실함이 없고 저희 심중이 심히 악하며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저희 혀로는 아첨하나이다
10. 하나님이여 저희를 정죄하사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고 그 많은 허물로 인하여 저희를 쫓아내소서 저희가 주를 배역함이니이다
11. 오직 주에게 피하는 자는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인하여 영영히 기뻐 외치며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12.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저를 호위하시리이다
<시편 5편 성경주석>
5:1 심사.
시인은 하나님께 자기가 하는 말뿐 아니라 그 말이 의도하는바 곧 자기 마음속에 간직되어 있는 표현되지 않은 은밀한 열망까지도 염두에 두시라고 간구한다. “심사”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하기그(hagig)로 오직 이곳과 그것이 “묵상”으로 번역된 시 39:3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이 단어는 “신음” 또는 “한숨”의 의미를 지닌 듯이 보인다. 시인은 여기서 하기그를 써서 바울이 스테나그모이(stenagmoi), “탄식”(롬 8:26)이라고 부른 것을 일컫고 있는 듯하다. “기도는 무언의 혹은 말로 표현된 영혼의 진지한 갈망이다.”
5:2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왕인 다윗이 왕의 왕이신 하나님께 자신이 종속되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여기서 “하나님”은 엘로힘(’Elohim [참조 제1권 150~ 152])의 번역이다. 시인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인정한다. 우가릿 문헌들에서는 엘(’el)을 “왕”으로 칭한 예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5:3 아침에.
시인은 아침마다 규칙적으로 기도를 드리며 자기의 목소리를 드높이는데, 원수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지금 이 시간에는 특별히 더 큰 소리로 하나님께 간구한다(참조 시 55:17; 59:16; 88:13). 아침마다 기도하는 습관은 그 어떤 것보다도 좋은 습관이다. 이는 영혼이 하나님과 단 둘이 미지의 한 날 동안에 수행할 의무를 준비하고 또한 그날 맞닥뜨릴 난관들을 위해 대비하기에 아침보다 더 좋은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아침의 한 순간-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낼 수 없다면- 그 한 순간이 고된 하루가 끝나는 때의 한 시간보다도 더 낫다.”
잠에서 깬 후에 우리의 의식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바칠 제물로 드리는 습관을 배양할 필요가 있다.
5:3 (기도)하고.
(「제임스왕역」에는 “direct”[지시하다]로 되어 있음-역자 주). 히브리어 아라크(‘arak), 문자적으로 “정리하여 두다.” 이 단어는 창 22:9에서 제단 위에 나무를 배열하는 것과 상 위에 진설병을 정렬하는 것(출 40:23)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시인의 기도는 일종의 잘 준비된 아침제사이다. 그것은 생각 없이 아무렇게나 드리는 제사가 아니다.
5:3 바라리이다.
시인은 그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이 그에게 은총의 표를 보여 주시기를 바라고 있다. “깨어 있어 기도하라”(마 26:41)라 하신 구주의 명령과 비교하라.
5:4 죄악을 기뻐하는.
하나님은 너무나도 거룩하고 순결하기 때문에 악인들의 계획을 진전시키는 일에 그 어떤 역할도 할 수 없다. 만일 그가 그들에게 호의를 보인다면 이는 곧 그들이 그의 거처에 들어오도록 허락하는 것과 동일한 일이 될 것이다.
5:4 유하지.
히브리어 구르(gur), 문자적으로 “머무르다.” 악이 마치 집안에 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것처럼 의인화되었다.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 있는 사람들은 시 15편에 묘사되어 있다.
5:5 오만한 자.
(「제임스왕역」에는 “the foolish”[어리석은 자들]로 되어 있음-역자 주). 히브리어 홀를림(holelim), “자랑하는 자들.” 교만한 자들, 거만한 자들, 죄인들.
5:5 서지 못하리이다.
하나님은 “오만한 자”의 주장을 결코 인정하시지 않는다(참조 시 1:5). 그는 죄악은 그 형태에 관계없이 모두 미워하신다. 시편에서는 “행악자”라는 용어가 계속적으로 악의 원칙을 구체적으로 실행한 사람들을 일컫는 데 쓰이고 있다.
5:6 거짓말.
히브리어 카자브(kazab). “궤휼.” 참조 시 4:2.
5:6 싫어하시나이다.
하나님은 죄를 너무도 미워하기 때문에 죄인 속에 존재하고 있는 죄를 간과할 수 없다. 하나님이 미워하는 자들은 문자적으로 “피들과 속임수의 사람들”이다. 여기서 복수형인 “피들”은 피 흘린 죄 곧 살인을 일컫는다(참조 창 4:10). 다윗의 원수들은 기만과 살인으로 특징지어진 자들이었다.
5:7 오직 나는.
강력한 대조법. 시인은 악인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수 있다는 고요한 확신을 그 마음에 느낀다. 그것은 그의 권리이다.
5:7 주의 풍성한 인자.
악한 자는 하나님의 집에서 환영을 받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는 그곳에서 환영을 받는다. 그는 하나님이 자기를 환대해 주실 것임을 확신한다. 이러한 확신은 진실로 하늘 아버지에 대한 아이 같은 신뢰심의 표출이다.
5:7 경외함으로.
이 표현은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예배드리는 것을 나타낸다.
5:7 성전.
히브리어 헤칼(hekal). 사 39:7이나 단 1:4에 나오는 궁전 혹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 헤칼은 솔로몬의 성전(왕하 18:16; 23:4 등)뿐 아니라 성전이 세워지기 이전에 있던 성막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쓰였다(삼상 1:9; 3:3; 삼하 22:7). 따라서 이 절에서 헤칼이란 단어가 쓰였다고 해서 그것이 어떤 비평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 시가 다윗 시대 이후에 쓰인 것임을 보여 주는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 시 27편에서 성소가 “전”(헤칼, 4절)으로도 불리고 또한 “장막”(오헬[’ohel], 6절)으로도 불린 것에 유의하라.
더 나아가서, 이 절에 등장하는 “집”(바이트[bayit])과 “성전”(헤칼)이라는 유사한 표현들이 우가릿 문헌들(참조 68, 69쪽)에 신이 거하는 장소를 의미하는 동의어로 자주 나오는 사실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다음은 그 대표적인 실례들 중 하나이다. “그런 후에 아나트가 그녀의 집(bt)으로 들어갔으니, 곧 그 여신이 자기의 신전(hkl)으로 나가니라.”
현대 유대교 의식에서 시 5:7은 예배자가 회당으로 들어가면서 암송하는 구절로 구별되어 있다.
5:7 경배하리이다.
문자적으로 “엎드리다.” 예배자들은 성소 안으로 들어가도록 허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인 그곳을 향해서 엎드렸다.
5:9 신실함.
히브리어 느코나(nekonah), “견고히 세워지다”, “신뢰할 만하다”라는 의미의 쿤(kun)에서 파생됨. 원수들은 전혀 신뢰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전적으로 거짓된 사람들이며 또한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압살롬은 거짓된 핑계를 대고 헤브론으로 갔다(참조 삼하 15:7~10).
5:9 악(하며).
문자적으로 “멸망.” 더 나아가 마치 열린 무덤과도 같은 그들의 목구멍은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삼켜 버릴 태세를 갖추고 있다. 바울은 사람의 보편적 타락상을 묘사하기 위해 이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롬 3:13). 시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몸의 또 다른 지체인 혀도 이와 동일하게 타락한 것으로 언급한다(참조 약 3:5~9). 이 같은 묘사는 압살롬과 동료 반역자들이 행한 반역에 대한 매우 적절한 묘사인 것으로 보인다(참조 삼하 15:1~6).
5:10 정죄하사.
(「제임스왕역」에는 “destroy”[멸하다]로 되어 있음-역자 주). 히브리어 아샴(’as∨am), “정죄하다.” 여기에 쓰인 형태로는 아샴이 “정죄를 유지하다”라는 의미가 된다. 시인은 하나님이 그의 원수들을 죄 있는 자들처럼 취급해 주기를 원한다. 그들이 유죄인 것은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는 그들이 “자기 꾀에 빠지게” 해 달라고 간구하는데, 이는 곧 그 자신들의 계획이 그들의 멸망을 초래하는 것을 의미한다(참조 시 7:15, 16; 잠 26:27; 28:10). 이것은 구약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사상이다. 죄는 결국에 가서는 자기 자신을 삼켜 버리고 만다.
5:11 기뻐하며.
참조 시 2:12 주석.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기쁨의 기회가 주어진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쁨을 크게 소리쳐 표현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의 보호자가 되시는 것으로 인해 기뻐한다. 시인은 자신의 기쁨을 확대해서 여기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든 사람을 포함시킨다.
5:11 이름.
“사람”의 동의어로도 종종 쓰인다.
5:11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자신에 관해 보여 주신 모든 것으로 인해 즐거워한다. 그는 하나님으로 인해 즐거워하며, 그분의 속성들과 그분의 사랑의 증거들을 묵상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며, 하나님과의 교제로 즐거워하며 또한 사랑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즐거워한다.
5:12 방패.
히브리어 친나(s.innah). 몸 전체를 덮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큰 방패(시 3:3 마겐[magen]과는 다름). 전시에 방패가 병사를 둘러치는 것처럼 하나님도 의인들의 완전한 보호막이 되신다. 이 시는 하나님의 완전한 보호에 대하여 시인은 자신의 완전한 신뢰를 공언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베이 시편(The Bay Psalm Book)은 이 절을 다음과 같이 의역한다. “그리고 방패로 하심같이 은혜로 그를 가납하심으로 그에게 관을 씌우시리이다.”
이 같은 아침 기도를 드림으로 시인은 그날 원수들이 행할 맹공을 맞을 준비가 되었다. 이와 관련해서 스퍼전(Spurgeon)이 다음과 같이 적절히 언급하였다. “하나님께 우리의 나날의 아침과 더불어 우리의 전 생애의 아침을 드리자. 기도는 낮을 여는 열쇠가 되고 또한 밤을 잠그는 자물쇠가 되어야만 한다. 헌신이 새벽별과 저녁별이 되어야만 한다. 만일 우리가 바르게 하루를 시작한다면 그날 온종일 하나님의 임재를 더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이며, 또한 고요하고 확신에 찬 마음을 가지고 잠자리로 돌아올 것임을 더 크게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5:12 저를 호위하시리이다.
곧 “저에게 관을 씌우시리이다.”
출처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제6권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시사.(시편 5편)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제목 :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시사.
본문 : 시편 5편
1.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2.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3.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4.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
5.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6.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7.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8.여호와여 나의 원수들로 말미암아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
9.그들의 입에 신실함이 없고 그들의 심중이 심히 악하며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같고 그들의 혀로는 아첨하나이다
10.하나님이여 그들을 정죄하사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고 그 많은 허물로 말미암아 그들을 쫓아내소서 그들이 주를 배역함이니이다
11.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12.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
말씀 :
시편 5편은 시편 3, 4편과 마찬가지로 원수에 의해 압박받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기도의 시이다.
다윗은 시편 5편을 통해 하나님의 본질을 다루면서 자신의 기도가 응답 될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다.
먼저 다윗은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한다.
본문 1절.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다윗은 여호와께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시기를 간구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심정을 헤아려 달라고 요구한다.
그런데 본문의 ‘심정’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하기그’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말은 잘 들리지 않게 ‘중얼거림’, 끙끙 않는 ‘시름 소리’ 등을 나타내는 말이다.
지금 다윗이 처한 상황이 너무 힘들고 깊은 고민에 빠져있음을 알게 한다.
그래서 소리 내어 기도하지 못하고, 끙끙 앓으면서 시름 소리 정도밖에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기도조차도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기를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다윗은 이내 곧 큰 소리를 내며 하나님께 기도한다.
본문 2절.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하나님의 실체, 즉 참된 왕은 바로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면서 자신의 긴박한 기도를 들어주시기를 간구한다.
이것을 작은 소리로 시름 하던 기도가 큰 소리 내는 기도로 발전하였다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기도의 방법이나 모습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떤 모습으로 기도하든지 간절함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구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간절함을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는 것이다.
어쨌든 이제 다윗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기도한다.
본문 3절.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여호와께서 아침부터 반드시 자신의 기도 소리를 들으실 것을 확신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바라고 기다린다는 것이다.
다윗은 자신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확신하며 기다릴 수 있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본문 4~6절.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 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죄악을 싫어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악이 주님과 공존할 수 없다.
거룩한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죄악과 구별되시는 하나님이다.
그리고 오만한 자, 즉 자기 자랑하기 바쁜 자들은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인간의 목적인데, 자기 자랑만 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것이 된다.
악을 싫어하시기 때문에, 당연히 악을 행하는 자들을 미워하신다.
거짓말하는 자에 대한 용서란 있을 수가 없으시다.
사람에게든 하나님에게든 인간은 반드시 정직하고, 진실해야 한다.
그리고 생명을 경시하고, 존중하지 않는 자들을 경멸하신다.
본문의 ‘거짓말하는 자’와 ‘속이는 자’는 비슷하지만 같은 의미는 아니다.
본문의 ‘거짓말’은 히브리어로 ‘카자브’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말 그대로 상대방에게 거짓으로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속이다’는 히브리어로 ‘미르마’라는 단어이다.
교묘하게, 간사하게, 사기 등의 의미를 지닌다.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라, 상대를 교묘하고 간사하게 속여서 사기를 치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방을 속이는 것이다.
그래서 새 번역 성경에는 ‘속인은 자’를 ‘사기꾼’으로 번역하고 있다.
어쨌든 자신을 변호하기 위한 변명 적인 거짓말이든, 남을 속여 이익을 취하려는 사기성 짙은 거짓말이든 하나님께서는 진실하지 못하고 정직하지 못한 것을 다 싫어하시고 경멸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면서 본문 7절을 통해 이렇게 고백한다.
본문 7절.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본문의 ‘주의 풍성한 사랑’은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에서 주어지는 사랑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다윗 자신을 사랑하시기로 작정하시고 약속하셨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응답을 확신하며 지성소로 올라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실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악을 싫어하시는 하나님의 본질과 다윗 자신을 사랑하겠다고 작정하신 주님의 약속을 근거로 제시한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으시고 응답하실 자신의 구체적인 기도 내용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본문 8절.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로 말미암아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
다윗을 공격하는 원수들 앞에서 다윗을 인도하실 것을 간구한다.
악을 싫어하시고, 악인을 경멸하시는 주님의 본질, 주님의 공의를 그들 앞에 나타내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악을 싫어하시는 하나님의 본질을 원수들 앞에 나타내시는 것이 왜 다윗에게 응답이 되는 것인가?
그것은 지금 다윗을 둘러싸고 있는 원수들이 바로 악인들이기 때문이다.
본문 9절.
“그들의 입에 신실함이 없고 그들의 심중이 심히 악하며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그들의 혀로는 아첨하나이다”
단순히 다윗 자신을 대적하는 원수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공의를 나타내시라는 것이 아니다.
그 원수들이 신실함이 없고 거짓말과 사기를 일삼는 사람들이었다.
마음이 악해서 말하는 모든 것에 사람들 죽일 수 있는 악한 말들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권력자들 앞에서 아부하고 간신과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게 되면 다윗의 원수들에게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게 될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 되는 것이다.
다윗은 이제 구체적으로 자신의 원수인 악인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해 주시기를 간구한다.
본문 10절.
“하나님이여 그들을 정죄하사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고 그 많은 허물로 말미암아 그들을 쫓아내소서 그들이 주를 배역함이니이다”
악을 행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악한 원수들이 심판받아 마땅함을 다윗은 하나님께 고백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구약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이런 내용, 즉 원수나 대적자, 악인을 벌하시라는 믿는 자들의 고백을 볼 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왜? 우리는 ‘원수도 사랑하라’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은 예수님의 놀라운 사랑과 대치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둘 중의 하나는 틀린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것은 결코 대치점이 아니다.
일단 구약의 사상은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의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완성하시기 위해 오셨다고 스스로 고백하셨다.
그렇다면 구약시대는 율법이 온전하게, 완전하게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는 초기 단계이다.
그것이 계속 발전되면서 나중에 예수님 시대에 이르러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똑같은 잣대로 구약과 신약을 비교할 수는 없다.
그리고 두 번째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그냥 그들의 죄를 눈감아주라는 말씀이 아니다.
원수가 무슨 죄를 저질렀든지 그냥 덮어주고 모르는 척하라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이다.
원수를 향한 진정한 사랑은 그들이 자신들의 죄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하나님 앞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하는 것에 이르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것이 원수를 향한 참된 사랑이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될 수만 있다면, 필요에 따라 강한 징계도 있어야 한다.
달래서 깨달을 수 있다면 달래야 할 것이고, 몇 대 두들겨 맞는 것으로 알게 된다면, 가슴 아파도 때려야 한다.
제가 자주 말씀드리는 것인데, 하나님 징계는 징계이면서 기회이고, 벌을 내리시는 것이지만, 동시에 깨달음을 주시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원수를 심판하시기를 간구한 다윗은 이제 하나님께 피하는 자의 기쁨을 고백하는 것으로 시를 마무리하고 있다.
본문 11, 12절.
“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
다윗은 자신처럼 고난 중에 하나님께 피하는 자들에게 기뻐할 것을 종용한다.
그 기쁨은 영원한 것이어야 하며, 즐거움으로 여호와를 노래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께서는 의인 된 자들, 하나님께 피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나를 힘들게 하는 원수들의 공격에 방패가 되어 주시고, 놀라우신 은혜로 호위해 주시며 직접 막아 주시기 때문이다.
본문에 사용된 복의 단어는 ‘바라크’이다.
시편 1편에 사용된 복의 단어가 ‘아솨르’였다.
‘아솨르’가 말씀에 순종하여 그 대가로 얻어지는 복을 말하는 것이라면, ‘바라크’는 행위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신적 권위로 거저 주시는 은혜를 나타내는 말이다.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피하는 자들은 하나님께로 피했다는 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함께하시고, 원수들에게서 보호하실 것을 약속해 주시는 것이다.
만약 이 복이 ‘바라크’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다윗이 아니라, 원수의 입장이 되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렇지 않은가?
원수의 행위라고 설명된 것이 바로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본문의 복이 행위와 상관없이 그저 하나님께 피하는 이들에게 주시는 무조건 적인 복이 아니었다면, 이 시편 5편의 고백은 우리에게 저주의 시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고, 고난과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그늘 아래 피하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하나님께 피하는 것만으로도 바라크의 복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려드린다.
사랑하는 한마음 신앙공동체 여러분….
우리가 다른 것은 할 능력이 안 된다고 하더라도, 어떠한 어려움과 고통과 아픔이 밀려와도, 반드시 하나님께로 피하는, 하나님을 먼저 찾는,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만은 무조건 잘하는 우리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그것만으로도 주님은 우리에게 방패가 되시겠다고, 호위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나의 행위와는 상관없이 주님을 찾는 것만으로 의인이라 칭하시고 복을 약속하셨다.
이 놀라운 은혜를 기억하고, 오늘도 주님께로 나아가는 믿음의 한마음 패밀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간구한다.
시편 5편_주께 피하는 사람
“주에게 피하는 자”(시 5:1-12)
시편 5편은 「다윗의 시」로 「영장으로 관악에 맞춘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영장」이라는 말은 「성전의 성가대를 관장하는 대장」을 말합니다. 곧 성가대장의 지휘에 따라 특별히 관악기에 맞춰 노래된 시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시편 5편의 시는 관악에 맞춰 주로 아침에 하는 노래로 불리워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다윗이 매일 아침이면 일어나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하였던 것 같습니다. 본문 3절에 보면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그의 하루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신다」라는 것은 아침의 기도를 더 잘 들으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그의 기도가 주로 아침에 이루어졌음을 보여줍니다. 곧 아침에 주님께서 저의 기도소리를 듣게 되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 그리고 하루를 마치는 저녁에 하나님 앞에 기도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치 대제사장이 아침과 저녁으로 제사를 드린 것처럼 그는 이스라엘의 대리 왕으로서, 아침과 저녁으로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대제사장으로서 아침에 기도하셨습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예수께서 새벽 오히려 미명에 일어나 기도하셨다.”(막 1:35)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백성의 중보자요 대제사장으로서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다윗도 아침이면 일어나 기도하므로 하나님의 대리 왕으로서의 사역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도 중보자처럼 기도했습니다.
특히 본문 1-3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다윗은 자신이 처한 형편을 헤아려 알아주시고 바른 길로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금 다윗이 당한 어려움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알 수는 없으나 마음에 큰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첫째로 다윗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1절)
본문 1절에서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사를 통촉하소서”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다윗은 억울한 심사를 통촉해 달라고 하나님께서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다윗은 자기의 모습을 그대로 하나님께 보여드리고 있습니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원하시고 있습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슬프면 눈물 흘리면서. 고통스러우면 소리 지르고 억울하면 억울하다고 외치면서 그분께 나아가는 솔직함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답고 자녀답고 성도다운 모습입니다. 엘리야 같은 불의 선지자, 권능의 선지자도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왕상 19:4)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우리도 솔직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로 왕이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2절)
본문 2절에서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왕이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왕이면서도 나의 왕은 바로 하나님이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 애원을 하면서 기도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에게 찾아와서 애원하듯이 다윗도 하나님께 애원하였습니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라는 고백이 이것은 다윗의 신앙 고백입니다 또한 우리의 신앙 고백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나를 존재케 하신 분이시다. 나를 구원하신 분입니다. 나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시고 받아주시며 나의 간구에 귀 기울이는 나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나를 죄악에서 건져주시고. 나와 함께 하시고…… 나와 함께 하시기 위해 성령을 파송 해 주신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나의 하나님은 나를 기다리십니다. 나의 간구를 기다리십니다. 왜냐하면 많은 선물을 가득 준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다윗은 응답을 믿고 기도하였습니다.(3절)
본문 3절에서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다윗은 응답을 믿고 기도했습니다. 다윗은 상쾌한 아침에 기도하고 응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응답을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것입니다. 활을 쏜 사람이 그 화살이 맞았는지 맞지 아니하였는지 살펴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응답을 기다렸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참음과 기다림이 항상 동반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즉각적인 응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을 두고 응답되는 경우가 많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섣달그믐에 결혼하고 정월 초하루에 아이를 낳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열 달이 되어야 합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기도응답을 늦추시며 우리의 인내심이 얼마나 되는가를 시험(試驗)하실지도 모릅니다. 또 우리에게 가장 유익하고 좋은 때를 기다리며 응답을 늦추실 수도 있습니다. 기도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응답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다윗이 억울한 일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 기도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나의 왕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시기에 자신의 기도를 언제든지 귀 기울여 들으시고 자신의 심사를 통촉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누구도 풀어주지 못하는 억울한 일이 있으십니까? 의로운 왕이시고 재판장 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부르짖기를 포기하지 마십십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의로우신 재판장이 되시는 하나님은 죄악을 기뻐하시거나 용납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당하는 어떤 억울한 일과 우리를 공격하는 어떤 악인들도 그분께 고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알아서 재판(심판)하시고 해결하실 것입니다. 이런 확신을 가지고 직접 원수를 갚으려 하기보다 나를 무고히 공격하는 자들에 대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아뢰십시오.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아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어떤 고통을 겪고 있습니까?
다윗이 지금 당하고 있는 고통에 대해서 분문의 말씀이 명확하게 말씀해 주지는 않고 있지만 그러나 본문 4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어렴풋이 그 내용이 무엇이었겠는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본문 4-6절을 보면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유하지 못하며 오만한 자가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거짓말하는 자를 멸하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고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지금 다윗은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신앙 고백하듯이 나열하고 있습니다. 본문 4절에서는 주님께서는 죄악을 기뻐하는 분이시기에 악이 주와 함께 유하지 못하고 오만한 자가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한다고 고백하고 있고, 본문 5절과 6절에서 주님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고, 모든 거짓말하는 자를 멸하시는 분이시며, 피흘리기를 즐기고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는 분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 다윗의 고백하는 내용 속에서 「다윗이 당하는 어려움이 어떤 것이었겠는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오만한 자 또는 행악자로 인하여 당하는 모든 고통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거짓, 오만함, 그리고 온갖 악행들이 다윗을 괴롭히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대적들이 다윗을 모함하는 거짓말을 하고, 오만함을 떨고, 온갖 악행을 서슴지 않고 저지른 것 같습니다. 그들은 피 흘리기를 즐겨하며 온갖 거짓으로 사람들을 속이기도 합니다.
본문 9절에 보면 저희 입에는 신실함이 없고, 마음 속에는 심히 악한 것이 가득하며, 목구멍은 열린 무덤처럼 더러운 것을 쏟아내며, 아첨하기를 쉬지 않는 자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신실함이 엿보이지 않습니다. 자기 유익을 위해서는 언제든지 배반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는 어떤 악행도 서슴지 않고 범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더럽고 썩어 냄새나는 것들입니다. 온갖 아첨과 모함과 거짓들로 가득합니다. 바로 이러한 자들이 다윗을 대적하고 잇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다윗은 다윗의 형편은 그러한 자를 징계할 수 있는 형편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들은 드러내놓고 보란 듯이 악을 범하고 있습니다. 거만한 눈을 들고 오만한 말을 서슴없이 내뱉습니다. 거짓말로 다윗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피 흘리기를 즐기는 악함이 가득한 자들입니다. 이로 인하여 다윗은 큰 마음의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마음 속에는 억울함과 답답함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모든 것을 여호와께 아뢰고 여호와께서 자신의 심사를 통촉해 달라고 호소하는 것뿐입니다. 자신의 억울함을 통촉해 주시고 이러한 악인들을 심판하시고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그리고 다만 평안한 중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다만 그를 경배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여호와께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심판하고 자신을 신원해 주실 이는 오직 한 분 여호와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사정을 알고 통촉해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누구도 내가 처한 상황을 온전히 이해해줄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은 자기를 중심해 생각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사정을 알고 이해해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는 친히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의 고통을 친히 맛보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몸을 입고 우리같이 되셔서 연약함을 친히 겪으셨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우리를 잘 이해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다만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경배하겠다고 고백합니다.
본문 7절에서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인자를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리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다윗은 주님의 크신 인자하심을 믿고 다만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경배하겠다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응답을 믿음으로 기다리겠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주님께서 크신 인자하심으로 응답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분께서 악과 선을 감찰하시는 자로서 선악(善惡)간에 판단하실 것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은 그간에 자신에게 신실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때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가는 상황에서도 목자처럼 자신을 인도해 오셨던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위험 가운데 있을 때 크신 구원의 능력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다만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경배하겠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가 주의 집에 들어가 칩거하며 기도하는 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어쩌면 가장 뚜렷이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의 배후에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가 역사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그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현실을 헤쳐 나갈 가장 지혜롭고 선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우리 믿음의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뜻을 따라 일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리는 것이요,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기도를 했습니다.
본문 8절에서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을 인하여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다윗은 하나님께서 대적하는 원수들을 보시고, 자신을 주님의 의로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의 길을 자기 앞에 곧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악행자의 모든 시험과 올무로부터 자신을 지켜 달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다만 주의 의를 쫒아 행할 수 있도록 자신을 인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의 뜻을 분명하게 알리셔서, 끝까지 그 뜻을 쫒아 의인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붙들어 달라고 그는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악한 자들의 악과 반대되는 의의 삶으로 자신을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악인의 길을 좇아 악한 길을 가지 않고 의인의 길을 좇아 주의 뜻을 구하는 길을 가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사실 악을 악으로 보복하고 싶어 하는 것이 솔직한 우리의 심정일 것입니다. 자기도 악한 방법으로 보복하고 싶은 것이 죄인들의 속성일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은 악인의 길을 가지 않고 의인의 길에 설 수 있게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의의 길로 자기 삶을 인도하시고 그 길을 좇아 똑바로 갈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그는 기도하고 있습니다. 온 세상이 세상영광과 자랑의 길을 가고, 온 세상이 육체의 정욕을 좇아 범죄의 길을 가며, 거짓과 속임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행악자의 길을 갈지라도, 다윗 자신만큼은 의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자신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그 길로 인도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온 세상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길을 갈지라도 오직 자신만은 주의 크신 인자하심을 따라 경배의 삶을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는 기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본문 10절에서 “하나님이여 저희를 정죄하사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고 그 많은 허물로 인하여 저희를 쫓아 내소서 저희가 주를 배역함이니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다윗은 자신이 의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인도해 달라는 기도할 것뿐 아니라 대적의 심판을 위해서도 간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개입하셔서 그들의 악한 꾀로부터 자신을 구원하시고 도리어 그들로 자기 꾀에 빠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많은 악행을 인하여 하나님의 집에서 추방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악한자를 심판하므로 모든 의인들을 신원해 달라고 그는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윗의 원수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원수이기 때문입니다. 다윗 왕을 배반하므로 다윗을 세우신 하나님을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대리자요, 그의 왕권을 시행하는 자입니다. 그러하기에 다윗을 거절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원수들을 심판하시고 악인들을 멸하시므로 신실한 종들의 억울함을 신원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지금 하나님나라의 대리 왕으로 신실한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 앞에 그같이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원수들을 향해 그같이 기도해야 하는가?
원수들을 저주하고 쫓아내 주시도록 기도해야 하는가? 우리는 그렇게 기도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다윗의 나라는 원수를 저주하고 심판하므로 세우는 나라였지만 우리가 세우는 나라는 도리어 원수를 위해 기도하고 축복하므로 세워지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원수를 정복하므로 세워야 하는 나라인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다윗은 하나님의 원수를 자기 원수로 알고 싸워야 하는 경륜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원수를 저주하는 것이고, 그들의 멸망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본문 11절에서 “오직 주에게 피하는 자는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인하여 영영히 기뻐 외치며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자신은 유일한 피난처요, 방패요, 보호자가 되시는 하나님께 피하여 있겠다고 고백합니다. 다만 하나님의 공의에 그의 인자하심에 모든 것을 맡기고 주의 품에서 안식하겠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악인처럼 칼에 의지하지 않고 세상의 악한 꾀에 의지하지 않고 다만 주를 의뢰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다윗은 본문 12절에서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저를 호위하시리이다.”라고 고백하고 하면서 자신의 칼과 힘을 의지하지 않고 주를 의지하는 자는 주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주께 피하는 자만이 주의 보호를 인하여 영영한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을 말합니다. 주를 사랑하는 자, 주를 사랑하기에 끝까지 의인의 길을 떠나지 않는 자만이 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즐거워하게 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의인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며, 자기를 의뢰하는 자의 보호자요, 방패이시기 때문입니다. 자기에게 피하여 오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여호와는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 주를 사랑하기에 주의 뜻을 쫒아 의의 길을 가는 자를 은혜로 호위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피하여 오는 자를 날개로 덮으실 것입니다. 성소에 계신 하나은 넘치는 인자하심으로 그런 자를 받으시고 품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겸손히 자신을 의뢰해 오는 자를 부끄럽게 만들지 않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을 신뢰하는 모든 자를 하나님 앞에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하도록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분은 넘치는 은혜로 우리를 호위하십니다. 그를 의뢰하고 그의 풍성한 인자를 힘 입고자하는 자, 주를 따라 의의 길을 걷기를 기뻐하는 자, 이 땅을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을 구하며 믿음으로 걷고자 하는 자를 그는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모든 시험과 악으로부터 보호하실 뿐만 아니라 끝까지 의의 길, 주님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의인의 방패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그의 은혜로 다윗을 호위하셨습니다. 비록 다윗이 범죄하여 이런 저런 어려움을 겪었어도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시며 자비의 하나님이셔서 자기를 의뢰해오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습니다. 악한 자들은 비방하기를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할자라고 비방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할 자라고 비방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은혜를 입히시고 다윗을 보좌에로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뵙고 기뻐하도록 그의 걸음을 인도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다윗은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으로 사셨습니다. 우리의 대표자로서 그는 모든 악한 비방과 모함과 핍박 속에서도 의의 길, 순종의 길을 가신 것입니다. 악인들은 다윗을 모함하고 비방했던 것처럼 예수를 모함하고 비방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으나 예수께선 자기 생명을 하나님께 의탁하고 하나님만을 피난처 삼으셨습니다. 그리하시므로 그는 하늘보좌의 영광의 자리에 앉으셨고 우리의 피난처요, 보호자가 되셨습니다. 바로 그분께서 교회를 자기 몸으로 지으시고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분으로서 함께 하심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가 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영원히 교회와 능력으로 함께하실 것입니다. 여전히 우리는 세상 중에 있기에 세상의 비방과 핍박을 받지만 예수께서 은혜로 호위하실 것입니다.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은혜로 호위하시는 하나님께서 부활하신 영으로 우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유일한 피난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는 친히 우리의 형제가 되셔서 모든 것을 체휼하셨기에 우리의 심사를 통촉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주께서 우리를 아시고 도우십니다.
다윗처럼 하나님께 피하는 자는 보호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를 의뢰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않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보호를 인하여 기뻐 외치며 영영한 즐거움으로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주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은혜로 저를 호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악한 자의 권세에서 지키시고 보호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로 이 주님을 의지하여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우리의 심사를 통촉해 주시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부르짖는 기도에 응답해 주시도록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로 악인의 길을 가지 않고 의인의 길을 좇아 주의 길을 가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주께서 가르치신 길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모든 시험과 악에서 지켜주시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주를 의뢰하는 자를 주께선 기뻐하시고 넘치는 위로와 기쁨으로 채우실 것입니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영영한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삶으로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맛보며 사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
고난 중의 기도 (시 5)
주제: 고난 중의 기도
본문: 시편 5편
설교자: 최종혁
[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관악에 맞춘 노래]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2]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3]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4]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 [5] 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6]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7]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8]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로 말미암아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 [9] 그들의 입에 신실함이 없고 그들의 심중이 심히 악하며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그들의 혀로는 아첨하나이다 [10] 하나님이여 그들을 정죄하사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고 그 많은 허물로 말미암아 그들을 쫓아내소서 그들이 주를 배역함이니이다 [11] 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12]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어려움이 있을 때 사람마다 반응하는 것은 조금씩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고난이 있으면 그것에 대해 불평하고 심지어 하나님께 원망을 하기도 합니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 불만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있었는데, 세상의 나쁜 일들은 모두 그에게만 생기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저 역시 괴로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어려움이 있을 때 자신만의 동굴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을 만나려고도 하지 않고 교회도 나가지 않으며 인간관계를 멀리하는 것으로 그 어려운 상황을 보내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어려움이 왔을 때 더 주님을 찾고 더 열심히 교회에 나가며 간절히 기도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믿는 자라면 어려움이 있을 때 하나님께 기도로 아뢰며 슬픔을 내려놓는 것이 마땅합니다.
오늘 우리는 다윗의 시편을 통해 고난 중에 어떤 기도를 드릴 수 있는지 배우기를 원합니다.
시편 5편은 3편과 같이 ‘아침시편’으로 분류되지만(3절) 사실 내용상으로는 4편과 더욱 유사합니다. 4편에도 등장하는 악인들, 대적들로 인한 어려움이 5편에도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간 4편을 통해 어려움 중에서도 어떻게 평안히 눕고 잘 수 있는 지 말씀드렸는데, 오늘은 5편을 통해 우리가 그런 어려움 중에 있을 때 어떤 기도를 드릴 수 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1-3절에서 기도의 자세를 배울 수 있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1),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2). 1절에서 다윗은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힘든 상황에서 하나님 앞에 이와 같이 기도를 드립니다. 또한 그는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우리도 어려움 중에 뭐라 표현을 해야 할 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도 나의 심정을 헤아려 달라는 기도입니다.
여기서 ‘심정’이라는 단어는 한숨, 탄식으로도 번역할 수 있고, 중얼중얼 하는 것으로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한나가 소리를 내지 않고 중얼거리며 기도를 할 때 엘리 제사장이 그를 보고 술에 취했다고 생각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중얼거리며 기도할 때 소리가 나지 않으니 다른 사람은 알 수가 없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탄식하고 제대로 말하지 못하더라도 제 마음을 헤아려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2절에는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감정이 너무 크고 상황이 너무 절박해서 하나님 앞에서 부르짖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걷다가 비바람을 보면서 물에 빠져 들어갈 때 그는 주님께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소리쳤습니다. 이것은 아주 짧지만 자신의 필요를 구하는 절박한 기도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하는 말을, 그 탄식을, 잘 표현하지 못하더라도, 절박하게 부르짖는 소리를 들어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표현들은 매우 순화하여 번역되었는데, 사실 다윗이 기록한 것은 명령형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께 명령형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그만큼 절박한 마음 상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의 간절한 마음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부릅니다. “여호와여”(1)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2), “여호와여”(3). 그는 특별히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언급합니다. 또한 흥미로운 것은 그 자신이 왕이었는데 하나님을 왕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주권을 가지고 행하시는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3). 하나님은 아침 뿐만 아니라 언제나 기도를 들으시는 것을 다윗이 모를 리 없습니다.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시 55:17),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시 119:164). 그러나 그가 특별히 아침을 언급한 것은, 아침에 매일 제사를 드리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 시간을 기억하고 이른 아침에 기도하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 이것은 하루의 처음이자 가장 귀한 시간에 기도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또한 3절에서 “기도한다”는 표현은 ‘정렬한다’, ‘준비한다’라는 뜻입니다. 무엇을 정리하거나 준비한다는 것이 기도라고 번역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군인들이 정리를 한다면 그것은 싸우러 나갈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정리를 한다면 나무를 준비하고 단을 정리하는 것, 제사를 드릴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법정에 나갈 정리를 한다면 잘 정돈된 말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욥기에는 “사정을 진술하다”(욥 13:18), “호소하다”(23:4)로 번역되었고 시편50:21에서는 “낱낱이 드러내다”라고 번역되었습니다.
즉, 아침에 하나님께 나가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 자신의 사정을 낱낱이 고하겠다는 말입니다. 잘 준비해서 다 털어놓겠다는 말입니다. 그의 간절한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는 “기도하고 바라리이다”라며 하나님 앞에 기대를 가지고 나아가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다윗의 기도의 태도는, ‘간절함’입니다. 우리는 때로 ‘이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시기나 하려나’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예 기도를 하지 않는 경우는 없습니까? 우리가 간절하게 기도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얼마나 절박하고 중요한 일인지 그 필요를 잘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이 얼마나 심각하고 위급한 상황인지 느끼지 못할 때 그렇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응답에 대한 확신이 약할 때 우리는 간절하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물에 빠져 들어갈 때 “주여 나를 도우소서”라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습니다. 베드로의 절박하고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비가 쏟아지고 파도가 이는 상황에서 그의 도움은 배도 동료도 아닌 오직 앞에 계신 예수님 뿐이었습니다. 그의 기도가 얼마나 간절하고 절박했겠습니까? 다윗도 그런 간절함으로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기도에는 이런 간절함이 있으십니까?
4-7절에서는 ‘기도의 근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 번 강조했듯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입니다. 자녀가 아버지에게 나가서 구하는 것은 둘 사이에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아무리 힘이 많다고 해도 제가 그에게 가서 무엇인가를 요구할 수가 없습니다. 그와 저는 아무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의 아버지나 어머니께 나아가서 부탁할 때는 들어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단순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거나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사람이거나 미워하는 사람, 의인이거나 악인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거나 함께 할 수 없는 사람,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나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 기준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속성에 있습니다.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4). 악이 하나님과 함께 머물지 못한다고 했는데 여기서 “머문다”는 것은 잠깐 들르는 것을 말합니다. 즉, 악은 잠시도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5). 오만한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서있을 수도 없습니다.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6). 하나님은 죄인을 싫어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죄는 미워하시지만 죄인은 사랑하신다’라고 말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죄인도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셔서 죄를 없애시고 사람을 구하시지, 죄 있는 상태의 사람(죄인)을 받으시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서지도 못하고 무엇을 구하지도 못합니다.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7). “오직”은 강한 대조의 표현입니다. 다윗은 앞에서 언급한 악인들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눅18장의 바리새인은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기를, 자신이 죄인과 같지 않음을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토색하고 간음하는 자들, 특히 세리와 같지 않음에 감사하며, 자신이 금식하고 십일조를 드리는 것에 대해 강조했습니다. 이런 바리새인들도 자신이 죄인들과 다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그들과 다른 것은 자신의 행위가 아닌,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주의 풍성한 사랑”은 인자, 또는 인애, 은혜, 긍휼, 자비 등으로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이 “사랑”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헤세드입니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이 맺은 언약, 그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가리킵니다. 즉, ‘언약에 기초한 하나님의 신실하신 은혜, 사랑’입니다. 그냥 일반적인 사랑이 아니라 아주 특별한 사랑인 것입니다. 그 변하지 않는 사랑은 언약을 기초로 한 것이므로 하나님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늘 신실하셨던 하나님과 달리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호6:4). 여기 “인애”도 같은 단어입니다. 이스라엘의 인애도 하나님의 인애처럼 변하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다윗은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어 담대히 말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언약의 신실하심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다윗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힘입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7). “경외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순종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 없이 예배할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죄악 가운데 거하면서 예배할 수는 없습니다.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사 1:15).
믿는 자들은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자들입니다. 예배할 수 있고 기도할 수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죄악 중에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죄를 짓는다고 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과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는 관계 회복되고 나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의 기초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입니다. 지금 죄로 인해 멀어졌다면 회개하고 돌이킨 이후에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8-12절에서는 ‘기도의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다윗이 무엇을 구체적으로 구한 것이 없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로 말미암아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8). 다윗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길로 걸어가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원수들은 그 길을 힘들게 만들지만 다윗은 그 길을 곧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의 길로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궁극적으로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실천’입니다. 하나님의 정의가 이 땅에서 실현되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입에 신실함이 없고 그들의 심중이 심히 악하며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그들의 혀로는 아첨하나이다”(9). 특별히 악인들의 입으로 범하는 죄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그들을 정죄하사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고 그 많은 허물로 말미암아 그들을 쫓아내소서 그들이 주를 배역함이니이다”(10). 시편을 읽어보면 이와 같이 악인이 망하기를 바라는 기도가 종종 등장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생각할 때 이런 기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나 다윗이 이런 기도를 한 이유는, 다윗의 대적들이 했던 일 때문입니다. “그들이 주를 배역함이니이다”(10).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했으며, 악을 행하고 자신을 높여 오만한 자로 섰던 것입니다. 그런 그들이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다윗은 개인적으로 복수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을 직접 제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다윗은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해주시리라 믿고 맡겼습니다. 다윗은 개인적인 복수심에서 이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가 이 땅에서 실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11). 이 표현은 사실 청유형이나 기도문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즉,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을 다 기쁘게 해주십시오. 즐거워하게 해주십시오”라고 말한 것입니다. 악인은 공의의 심판이 이뤄지기를 바라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그들이 기뻐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12). 의인에게 복을 주시기를, 방패로 그들을 보호해주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기도는 고난 가운데서 도움을 구하면서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나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길을 걷기를 바라고,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기를, 악인이 마땅한 벌을 받고 의인이 복을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죄악된 세상에서 비리와 부정부패를 보지만 그런 세상을 뒤엎을 수는 없습니다. 그 일은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하실 것입니다. 다윗은 그것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고난 가운데 드릴 수 있는 기도이며, 드려야 할 기도입니다.
기도는 호흡과 같다고 합니다. 호흡과 같이 꼭 필요한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또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기도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숨을 쉬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쉴 수 있습니다. 기도 역시 그리스도인들에게 호흡과 같이 자연스러운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만일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나에게 하나님이 필요 없다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들 중에 하나님이 필요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교만이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은 다윗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까? 다윗과 같은 기도를 우리 모두가 드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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